두 겹의 종속, 아래가 없는 자리
밤이 되면 법이 바뀌었다.
낮에도 노비의 처지는 무거웠다.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불을 때는 일. 주인의 시간에 맞춰 살았다. 궁 시리즈 4편 "궁궐의 밤"에서 왕의 시간에 맞춰 깨어 있던 궁녀를 다뤘다. 노비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 자면 잘 수 있고, 주인이 깨면 깨야 했다.
그런데 밤에는 다른 종류의 종속이 시작됐다. 여성 노비에게만 해당되는 종속.
그 구조를 보기 전에, 법을 먼저 봐야 한다. 법이 이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노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인의 잘못을 관에 고하지 못하게 돼 있었다. 이를 어기고 주인을 고소하면 노비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노비가 주인에게 욕설을 해도 교수형이었다. 노비가 주인을 폭행하면 참수형이었다. 반대로 주인이 노비에게 하는 것은 어땠을까.
죽이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주인이 노비를 때려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적 체벌이 폭넓게 허용됐다. 죽인 경우에도 형량은 가벼웠다. 《대명률》에 따르면 죄가 있는 노비를 죽인 주인은 장형 100대, 무죄인 노비를 죽여도 장형 60대에 도형 1년이 전부였다. 일반 살인이 사형인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웠다.
하멜 표류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주인을 살해한 노예는 극심한 고문을 거쳐 처형되지만, 주인은 사소한 이유로도 자기 노예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17세기 조선을 직접 본 네덜란드인의 기록이다.
이 법이 만드는 구조가 있다. 노비는 맞아도 고소할 수 없다. 고소하면 자기가 죽는다. 주인은 때려도 처벌받지 않는다. 죽여도 가벼운 벌로 끝난다. 이 구조 안에서 노비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견디는 것. 견디지 못하면 도망치는 것. 도망치다 잡히면 더 무거운 벌이 기다린다.
현대 심리학에서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행동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 노비의 무력감은 학습된 것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된 것이다. "할 수 없다고 믿게 되는 것"이 학습된 무력감이라면,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이 법적 무력감이다. 후자가 더 깊다.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밤의 이야기를 한다.
《대명률》에 따르면 강간은 교수형이었다. 신분에 관계없이. 이 법대로라면 주인이 자기 여종을 강간해도 교수형이다. 그러나 자기 소유의 여종을 강간한 죄로 주인이 처벌된 사례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작동할 수 없었다. 여종이 강간을 당해도 고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소하면 여종이 죽는다. 고소 없이는 재판이 시작되지 않는다. 법이 보호한다고 선언하면서 보호받을 수단을 차단한 것이다.
양반 주인의 입장에서 여종의 성은 꺼릴 것 없이 취할 수 있었다. "종년 간통은 누운 소 타기보다 쉽다"는 속담이 있었다. 여종을 쉽게 농락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갓김치종"이라 부르기도 했다.
기생과 비교하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기생은 기방에서 성적 대상이었다. 기방 밖에서는 아니었다. 공간이 나뉘어 있었다. 여성 노비는 공간의 구분이 없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밤에 불려 간다. 낮의 하인과 밤의 성적 대상이 같은 사람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관계 안에서 노동과 성이 동시에 작동한다.
기생에게는 기방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울타리는 감옥이었지만, 동시에 경계이기도 했다. 기방 안에서의 일은 기방 안의 규칙으로 작동했다. 여성 노비에게는 이 경계가 없다. 주인의 집 전체가 영역이다. 부엌도, 마당도, 안방도 모두 주인의 공간이다. 피할 곳이 없다.
결혼한 여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종의 남편(비부)이 있어도 주인의 성적 접근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항의하면 주인에 대한 반항이 된다. 반항하면 교수형이다. 남편은 아내가 강간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해야 했다.
다만 극단적 사례가 하나 있다. 노비의 남편이 자기 아내를 강간하려던 주인을 현장에서 찔러 죽인 사건. 이 노비는 4년 후 석방됐다. 주인을 살해한 노비가 석방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 정도의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구제받을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여종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종모법에 따라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다. 주인이 여종을 범해 아이가 태어나도 그 아이는 주인의 자녀가 아니라 주인의 노비가 됐다.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가 강간한 사람의 재산이 되는 구조다. 아이를 낳으면 낳을수록 주인의 재산이 늘어난다. 생명을 만드는 행위가 종속을 강화하는 행위가 되는 역설이다.
이것이 노비의 밤이었다. 낮의 종속 위에 밤의 종속이 겹쳤다.
하편에서 이 구조가 여성 노비의 안에서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