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요리 백과
어떤 대상을 향한 애정은 과거 경험에 대한 과도한 확신 혹은 지나친 결핍에서 온다. 경험치가 아주 높아 그것의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그리고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두 가지 모두 무언갈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딱히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요리하는걸 꽤 좋아한다. 그리고 그 너머엔 집밥에 대한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집에서 만든 음식에 추억이 거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엄마는 가정 주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친구 어머니가 간식을 만들어 주시면 정말 좋았다. 그 시절 나에겐 집에서 엄마가 만든 떡볶이, 샌드위치,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우리 가족의 한우 외식보다 특별했다. 부모님이 용돈을 주셔서 똑같은 음식을 밖에서 사 먹어도 절대 그 맛은 나지 않았다. 특히 소풍날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분식집에서 산 김밥을 먹었던 나는, 여전히 유명한 프랜차이즈의 프리미엄 김밥보다 집에서 대충 싼 김밥을 훨씬 좋아한다.
언제나 집밥에 굶주려 있어서인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집에서 혼자 뭔갈 만들어 먹곤 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손재주가 없어서 지금도 파괴에 일가견이 있는데, 그때부터 수박화채를 만든다고 온 주방을 얼음과 수박 파편으로 쑥대밭을 만들고, 내솥을 넣지도 않고 밥통 안에 쌀과 물을 부어 전기밥솥을 고장내기도 했다. 전자레인지 회전 유리접시를 깨뜨린 범인도 바로 나였다. 그렇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건이 더러 있었고 그 맛이 엄청나지도 않았을 텐데, 꿋꿋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곤 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청소년기엔 공부하느라 대학생 때는 서울로 매일 통학하느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자연스레 내 인생에서 요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 독립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역시나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무던한 입맛이라 미식가도 아니고, 대단한 요리를 만들겠다는 완벽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직접 고른 건강한 재료들로 집 맛이 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할 뿐이다.
요리는 실력과 무관하게 행위 자체에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가격과 신선함을 비교해서 장을 보고 다 먹고 치우는 일까지. 어느 하나 간단한 게 없다. 그렇지만 여느 힘든 일들이 그러하듯 결과의 성취감이 크다. 숨이 턱까지 차서 고통스럽지만 다 뛰고 나면 짜릿한 개운함을 맛볼 수 있는 러닝과 비슷한 것 같기도. 그래서 본업이 아닌데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성실하고 부지런할 거라고 추측한다. 가끔 퇴근하고 나면 요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귀찮음이 몰려오지만, 결국은 얼마 안가 다시 도마를 꺼내고 불 위의 프라이팬을 잡는다.
인생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과정 아닐까. 내 삶에서 그 중심에는 요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