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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많이 Oct 24. 2021

나 혼자 산다

1인 가구로 산다는 것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늘 불행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마음 한 편엔 언제나 독립을 꿈꿨다. 그렇게까지 보수적이거나 화목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우리나라 평범한 가정의 딸들이 그러하듯 딱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엿듣게 되는 부모님의 다툼, 형제와의 성격 차이, 사적이지 않은 나의 공간과 통제받는 귀가 시간. 종종 가족과의 동거는 월급의 대가로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과 닮았단 생각을 한다. 퇴사를 다짐하는 직장인처럼 경제적 제약만 없다면 반드시 나가서 내 맘대로 살 거라고 되뇌었었다.


평생을 바라던 독립의 시기는 결국 찾아왔다. 서울에서도 본가에서 거리가  쪽으로 취직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1 가구가 되었다. 꿈에 그리던 1 라이프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살면서 당연하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험난한 전세 시장에서 원하는 집을 고르고 은행에서 대출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나 큰돈을 남에게 맡긴다는 부담감은 실로 엄청났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부동산을 공부했고 필요한 절차들을 점검했다. 이사 업체를 알아보는 것부터 입주 청소까지도 어느 하나 만만한  없었다. 종량제 봉투는 떨어지지 않도록 사두어야 하고 생각 없이 쓰던 것들에는 관리비라는 명목으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  먹을지 정하고 매번 장을 보는 것도 일이었다. 그동안 해본  없었던 음식물 쓰레기 처리, 화장실 청소, 이불과 베개 커버 빨래까지···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오롯이 혼자서 스스로를 돌보고 내가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물론 반짝반짝 빛나는 혼자만의 순간들도 있다. 해질녘이면 온 집안이 유리창을 통해 노을을 흠뻑 받는다. 노르스름한 햇빛을 받으며 오븐에 갓 구운 빵과 샐러드로 저녁 식사를 하거나 잔잔한 음악을 틀고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해가 저문 밤에는 땀이 나게 운동을 하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듬뿍듬뿍 바디크림을 바르고 포근한 잠옷을 입는다. 모든 불을 끄고 침대 옆 창문을 활짝 열면 창 밖으로는 멀찍이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리고 시원하고 차가운 밤공기가 달게 느껴진다. 케케묵은 감정들은 한 풀 꺾이고 마음 한 구석이 몽글몽글 해지는 순간이다. 글을 쓰거나, 하루를 정리하는 생각에 잠기거나, 누군가와 스마트폰을 통해 차분한 대화를 나누기 좋은 밤이 찾아온다.


고작 7평 남짓한 방 한 칸일 뿐인데 그전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인생이 펼쳐진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들은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공감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나만 아는 행복을 느낀다. 이 작은 공간에 내일은 또 어떤 일, 어떤 내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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