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사람마다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광기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연극 온 더 비트가 그랬다. 그 작품에 푹 빠져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극장을 기말고사 기간 동안 매일같이 오갔다. 일주일 만에 같은 연극을 여섯 번이나 본 내 모습은 누가 봐도 광기에 가까웠다.
그 사랑은 단순히 관람에 머물지 않았다. 나는 수석을 놓친 적 없는, 적성과 잘 맞던 학교를 그만두고 연극학 입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연극을 더 알고 싶고,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로 한 작품을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다.
덕후는 사랑을 무모하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표현한다. 내가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그 무모한 선택들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를 되돌아보며 나의 덕질 연대기를 기록해본다.
처음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것은 아이돌이었다. 그것도 일본 아뮤즈 엔터테인먼트가 한국 시장을 겨냥해 데뷔시킨 독특한 포지션의 그룹이었다. 그들을 좋아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열렬한 사랑은 반드시 대중성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그 아이돌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홀로 꿋꿋하게 덕질을 이어갔다.
그 그룹의 활동이 점점 줄어들면서, 나는 다른 아이돌 그룹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독특한 콘셉트를 소화하기로 유명한 그룹이었다. 처음으로 콘서트를 가보고, 응원봉을 구매하며 본격적인 K-POP 덕질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군백기와 마의 7년을 넘기지 못한 채, 그들도 개인 활동으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멤버가 뮤지컬과 연극으로 데뷔했는데, 그렇게 나의 공연 사랑이 시작되었다.
사실 공연은 나에게 익숙한 영역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유명 라이선스 공연이나 내한 공연을 챙겨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질’로서 공연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이전의 공연 관람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사교적 이벤트였다. 그러나 공연 덕질을 시작한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공연은 사교의 장이 아니라 나만의 몰입의 공간이 되었다. 티켓팅 전쟁에서 좋은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공연 당일엔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공연에 온전히 집중했다. 티켓값 때문에 저녁 한 끼를 거르기도 했지만,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만큼은 언제나 설렜다.
덕질은 나의 일상을 바꾸었고, 동시에 풍요롭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배우의 생일 카페에 가고, 특별한 공연을 보기 위해 지방으로 기꺼이 떠났다. DSLR을 챙겨 스페셜 커튼콜을 촬영하고,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정하며 나만의 기록을 남겼다.
덕질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의 지식을 확장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반복 관람을 통해 작품의 맥락을 더 깊이 이해했고, 공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학교 수업과 연결했다. 예컨대, 과학 교양에서는 뮤지컬 ‘시데레우스’와 ‘최후진술’을 떠올리며 수업을 들었고. 시각예술 전공 수업에서는 뮤지컬 ‘프리다’나 ‘라흐헤스트’를 떠올리며 예술가의 삶을 재구성했다.
역사 역시 덕질을 통해 살아 숨 쉬는 학문이 되었다. 책으로 읽을 땐 딱딱하게 느껴지던 텍스트가 무대 위에서 생생히 펼쳐졌다. 좋아하는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나의 기억에 자연스레 각인되었다. 그리고 사라지는 공연을 기록하려고 쓴 후기는, 나의 언어로 그 작품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작년 초여름, 프로젝트 그룹 ‘일다’의 연극 <온 더 비트>를 사랑하며 나는 덕질의 끝을 보았다. 시간, 돈, 마음,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작품을 따라다녔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미쳤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덕질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다. 오늘도 극장을 가기 위해 미리 해야 할 일을 끝내고, 관람 후에는 그 경험을 과제에 녹여낸다. 공연을 찍고 편집하며 남긴 기록은 어느새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덕질은 단순히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아이돌, 공연, 영화, 드라마…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방식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