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자욱한 전장의 한복판. 한 손에는 깃발을, 한 손에는 총을 쥐고 선두에 선 여신이 있다.
하늘 높이 팔을 치켜들고 민중을 돌아보는 그의 흔들림 없는 표정에서 두려움이나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화면의 극적인 구도와 빛의 효과적 사용, 과감한 붓 터치는 혁명의 순간에 감도는 생생한 긴장감과 모종의 경건함을 극대화한다. ‘두려워 말고 나를 따르라’는 여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자유의 여신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민중은 화면 너머 그들을 탄압하는 자들에게 향하고 있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불후의 명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The 28th July: Liberty Leading the People)>이다.
1824년,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샤를 10세는 왕정 시대로 돌아가려는 극단적 왕정복고를 시도한다. 국왕은 언론과 선거권을 제한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의회를 해체하기까지 한다. 이에 수많은 프랑스의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고, 곧이어 ‘7월 혁명’이 일어난다. 학생, 노동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주도한 7월 혁명은 특히 28일 - 30일, 즉 사흘간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 샤를 10세의 퇴위까지 이룩해냈다 하여 ‘영광의 3일’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직접 투쟁에는 나서 싸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국가를 위해서 그림을 남기고 싶다.”
들라크루아는 이러한 자신의 염원을 담아 여신의 왼편에 검은 모자를 쓰고 총을 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오늘날까지도 들끓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손꼽힌다. 시대와 함께 가는 예술은 불멸이다. 그렇게 들라크루아가 화폭에 담아낸 역사적 사건과 민중의 투쟁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영원히 역사 속 한 페이지에 남아 자리하게 되었다.
<민중의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시대를 거치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밴드 콜드플레이 Coldplay의 명곡, Viva La Vida의 앨범 자켓에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해당 노래의 가사는 ‘왕국을 잃어버린 왕의 시점’이다. 영광을 누리고 저무는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혁명과 연대, 희망의 노래로써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앨범 자켓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작품과 맞아떨어지는 듯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Viva La Vida를 소리 높여 불러야 할 것 같은 시린 겨울이다. 오늘날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위 현장에서 그 선두에 나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해 나가는 2030 여성들이 손에 쥔 것은 다름 아닌 ‘응원봉’이었다.
이미 많은 언론 매체에서 이러한 새로운 시위 문화를 “좋아하는 것(문화, 예술,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용기”로 다룬 바 있다. 그렇다. 자유의 여신이 한 손에는 깃발, 한 손에는 총을 들었듯 이들의 손에 들린 색색의 응원봉은 저항의 상징인 동시에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대를 이끄는 미술, 음악, 문화는 영원히 민중의 가슴과 역사에 남는다. 들라크루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역사적 투쟁의 한 장면을 담아내어 이 시대의 예술, 붓과 펜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콜드플레이의 음악 Viva La Vida는 명실상부 인간사와 혁명의 노래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날 여성들의 응원봉 시위 문화 역시 ‘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랑과 문화의 힘’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자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