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어느 봄날, 문학소녀가 되고 싶어 문학동네 출판사의 북클럽에 가입했다.
북클럽에 가입할 때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을 펜팔’이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그때 받은 책들은 다 읽지 못해 반쪽짜리 문학소녀가 되었지만, 가을 펜팔만큼은 꼭 참여해 보고 싶어 소식이 뜨자마자 펜팔 참여를 신청했다.
신청 후 받은 편지지에는 총 4개의 챕터가 존재했다. 가장 먼저 ‘나의 프로필 및 가장 좋아하는 계절 소개’, ‘나의 펜팔 친구에게 적는 편지’, 펜팔 친구에게 전하는 나의 하루를 적는 ‘교환 일기’, 그리고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답게 펜팔 친구를 위한 ‘책 추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건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인데,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펜팔 친구를 위해 ‘적당한’ 책을 고르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떤 책이 좋을지,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 편지 쓰기를 며칠이나 미뤘다.
당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심적으로 걱정과 불안함을 겪는 상태여서 글을 쓰기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글에 반영되어 편지를 기대한 펜팔 친구에게 실망을 안겨줄까 걱정도 됐다.
고민 끝에 지금 솔직한 내 심정에서 비롯된 생각을 한글자 한글자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내가 느끼는 불안함에 도움이 됐던 책, 그리고 지금 내가 기다리는 계절을 적었다. 오히려 나도 상대를 모르고, 상대도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편지를 쓰고 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저 지금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 도움을 얻고 있는 책과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도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편지를 작성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나 펜팔 친구의 편지가 전달됐다. 편지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으며 조금 놀랐다. 분명 무작위로 배정된 편지일 텐데, 펜팔 친구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추천해 줬다.
아래는 나의 펜팔 친구가 소개해 준 ‘책 속 좋아하는 문장’이다.
앞으로 나의 길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그 길을 괴상하게 나 있을 테지, 어쩌면 그 길은 꼬불꼬불한 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길을 원형의 순환도로일지도 모르지.
나고 싶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한 달 전에 편지를 썼던 당시의 나와는 감정과 생각 모두 조금은 달라졌지만, 이 문장은 내게 여전히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가 잘하고 있을까? 나의 선택이 맞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던 내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책 추천 외에 적어준 하루의 일기, 편지까지 모두 읽고 나니 그 하루 내내 마음속이 꽉 차고 든든했다.
나의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편지를 받고 며칠이 지난 월요일, 메일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해있었다.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편지와 함께 동봉된 책의 제목으로 시작한 이 편지는 나의 펜팔을 전달받은 펜팔 친구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누군지 모를 나의 고민에 공감해 주며, 세심한 격려와 응원을 건내 준 편지 내용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꼭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사람에게도 다정한 말을 선뜻 건네주고, 그로 인해 감동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조금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 쓰는 마음과 편지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정함’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편지지를 구하고, 굳이 시간을 내어 펜을 들고, 무슨 내용을 쓸지 고민하는 모든 것은 ‘정’에서 시작한다. 그 정이 모이고 모여 넘치면 ‘다정함’이 담긴 편지가 완성된다. 어릴때 부터 모아 놓은 편지들이 다정함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다가오는 12월에는 내가 그동안 받은 다정함을 나눠, 날씨와 계절을 핑계로 다정한 안부 인사를 전달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