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그러니까 장녀들은 잘 알 거다. 사회생활용 마스크와 일상생활용 마스크의 간극이 엄청나다는 것을(물론 안 그러신 분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럴 거라 믿는다). 거의 얼굴을 갈아 끼우는 수준이다. 대체로 밖에서는 서글서글하고 상냥한 편이지만 집에선 살가움과 담쌓은 무뚝뚝이처럼 군다. 걱정이 되면 순수하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잔소리부터 나가는 식이다. 사랑을 빙자한 잔소리라고 해 두자.
나 말고 집에서 무뚝뚝한 사람 하나 더 있다. 우리 아빠다. 아빠는 엄마와 딸 둘인, 어쩌면 조금 외로울 법한 3:1 구조에 처해 있지만 그걸 다 떠나서 내게 원체 부탁을 잘 안 하신다. 키우는 작물이 여럿 있어서 일감이 늘 많은데도 말도 안 하고 혼자 다 해치운다. 도와드려요? 하고 물어도 다해 간다며 거절하기 일쑤다. 낮에는 아닌 척 했다가 밤이 되면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는 형국이다. 늦게 알아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사실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미리 선수를 쳐야 한다. 그래도 늘 한 박자 늦는다. 얼마 전 아빠가 또 혼자 감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깎고 있길래 그냥 조용히 위생장갑을 끼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래서, 이 감들 다 깎으면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손에 감물이 들면 잘 안 지워진다고, 너는 하지 말라고 하길래 나는 또 조용히 위생장갑 낀 양손을 들어올려 보여 주었다. 아빠는 그제야 과도 하나를 내게 건넸다.
걱정은 늘 본심과 다르게 엇나간다.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하루종일 작업하지 말라고, 미리 얘기만 해 주면 된다고, 왜 혼자 미련하게 다 깎으려 하냐고 아빠에게 톡톡 쏘아붙였다. 눈앞에 보이는 감만 대충 헤아리고 있었는데 실은 어제부터 감을 깎고 계셨단다. 이렇게 또 속으로 한숨 쉬는 스킬이 늘어 간다. 어쨌든 더 추워지기 전에 반건시(껍질을 벗겨서 감걸이에 꿰어 수분이 절반 정도 남게 말린 감) 작업을 끝내야 돼서 우리는 곧장 역할 분담에 들어갔다.
(무)뚝뚝이 1호는 감꼭지만 살려야 해서 능숙한 칼질을 요하는 감잎 제거 작업을, 뚝뚝이 2호는 그에 비하면 비교적 무난한 감 껍질 제거 작업을 맡았다. 왠지 둘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생각 없이 칼질을 하다가 초반에 감꼭지 하나를 시원하게 날려 먹었다. 1호의 일을 넘보는 게 아니었다. 티가 나지 않도록 다른 감들 사이에 그 녀석을 숨겨 두었다. 시치미 떼고 계속 감을 깎았는데 얼마 못 가서 1호에게 걸렸다.
모자를 잃어 머리가 휑한 녀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혼자 조용히 빵 터진 아빠. “그래서 일도 해 본 놈이 잘한다”며 짧고 굵게 나를 놀리더니 내 실패작을 어찌어찌 살려 보란듯이 감걸이 꼭대기에다 꽂아 주었다. 뚝뚝이 1호씨도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는 거다. “이 꼭지 안 떨어지게 깎는 게 기술이네”하고 칼질에 드는 노고에 대해 내가 알아주듯이 말하자 아빠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충청도식 화법이 빛을 발한다. 뱅뱅 돌려 말하는 걸 듣다 보면 결국 본인 자랑이다. 아빠 말로는 올해가 작년보다 감나무에 감이 훨씬 많이 달렸다고 한다. 거의 두 접(한 접=100개) 가까이 나왔다는데 왜 양에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물으니까 갑자기 감꼭지 얘기를 꺼내는 거다. 야채이든 과일이든 모든 건 꼭지 상태를 보면 안다고, 어디가 시원찮으면 꼭지부터가 시원찮다고, 우리집 감꼭지가 얼마나 깨끗한지 보라고, 어지간히 신경써서는 이렇게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자기가 농사를 잘 지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그 자랑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나도 “농사 잘됐네 진짜” 해 드렸다.
같이 감을 깎을 뿐인데 해프닝이 생긴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백발의 어머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교회 팸플릿을 건네며 갑자기 전도를 하시는 거다. 그분에게는 우리 부녀가 사랑이 넘쳐 보였나 보다.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저 감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에 도저히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와 나는 그저 묵묵히 감만 깠다. 속으로는 ‘사실 지금 이 모습은 페이크입니다. 그리고 우리집 무교예요’ 하면서.
허리를 쭉 펴면서 아빠에게 말했다. “같이 하니까 훨씬 편하지? 얼마나 좋아 빨리 끝나고. 뭐 작업할 거면 미리 얘기만 해 줘. 그럼 되잖아.” 생각해 보니까 여지를 너무 남겼나 싶다. 감 깎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다시 밖으로 소환되었다. 김장용 배추와 무가 새벽에 얼지 않도록 비닐포 덮는 작업에 한 번 더 불려 나갔다. 수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손을 탄 감은 옥상에서 지금 바람 샤워를 맞는 중이다. 꼬들꼬들한 반건시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단단한 과육이 말랑해지는 건 여러모로 흥미로운 일 같다. 마당에서 조용히 감을 깠던 무뚝뚝이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도 당도에 보탬이 되려나. 아무튼 올해의 반건시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감나무가 부디 건재하기를. 그래서 매년 감을 깎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진심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촌스러운 뚝뚝이는 세상 무미건조한 말 뒤에 이렇게 또 숨는다. 진심을 돌려 말한다. 그러고서는 안심한다. 감이라도 깎아서 다행이라고.
훗날 감은 나의 눈물 버튼이 될 게 뻔하다. 펑펑 울면서도 추억할 장면이 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릴 거다. 감 말고 다른 매개체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