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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을 마주하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며칠째 문을 막고 무단 주차된 차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끌탕을 합니다. 오며 가며 힐끔 보며 짜증을 냅니다.

아내는 그러려니 신경 쓰지 말라 하지만, 신경이 쓰입니다

연락처도 없어 차주를 찾을 길도 없습니다.

그렇게 한 닷새쯤 후 어느 저녁에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약도 오르고 화도 났지만 방법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런 무력감에 더 화가 납니다.


그러다 생각해 봅니다.

저 정도의 무개념이면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차를 잠시 대고 들어갔다가 갑자기 다쳤거나,

자다 말고 독감이 걸려 며칠 몸살이 났거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과음을 해서 술몸살이 났을수도있고 말이지요.

굳이 이해를 해보려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문득 내 모습을 봅니다

내 삶에 전혀 영향도 없고 도움도 안 될 일에 닷새나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마음도 아니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옹졸한 마음으로 말이지요.

어차피 이렇게 어이없이 지나갈 시간인데 뭐 하러 그리 보냈나 싶습니다. 신경 쓰지 말라던 아내의 말이 지혜의 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간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훨씬 길어있음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살아갈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고 말이지요.

어쩌면 정말 지금의 시간은 한 시절 잘 살고 남은 시간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남은 날들 여생 餘生 이지요


그 남은 날들의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봅니다.

의미 없는 분노와 시선으로 세월을 보낼지

조용한 마음으로 내 마음과 보낼지

여생의 모습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겠지요.


이제 남는 것은 즐겨야 할까 봅니다

이제 남는 것은 나눠야 할까 봅니다

아낌없이 미련 없이 말이지요

시간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아름다운 여생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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