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올해도 어김없이 내밀어진 판공성사표
죄 많은 세상
그 죄를 다 지고 가기 어려울 테니
네 죄를 사해줄 테니
고해하라 하시는데도
정작 지은 죄는 숨겨놓고
죄 아닌 죄만 꺼내 읊조린다
당신의 자손 이스라엘이
당신의 이름으로 벌이는 살육을 외면한 죄
레위인을 자처하며 당신의 이름을 팔아
권력과 돈을 좇는 타락한 성직자들을 바라보기만 한 죄
그들을 추종하는 무지한 이들을 비웃은 죄
타인의 신앙의 깊이를 제 신앙의 잣대로 판단하는
어긋난 신앙을 방관한 죄
신앙인이란 이름을 내세우며
무속에 심취한 이들을 어이없어 하기민 한 죄
그리하여 당신의 성전은 외면하고
내 안에 지은 아집의 성전을 허물지 못하고 머뭇거린 죄
대림절을 앞에 두고
지워야 할,
채 떠올리지도 못한 죄들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손에 들은 판공성사표는
기억나는 죄들만으로도
점점 더 무거워진다.
판공성사로 죄인들은 다 없어지고
세상에 나 혼자 죄인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는 죄목을 들고 기도한다
사하지 마소서 내 죄들을
다만
당신 오실 때
당신이 보여 줄 새날을 위해
치울 때 함께 치우소서
고해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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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는 판공성사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제도랍니다
가톨릭이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종교 임도 똑특한 일이고,
이럴게 우리나라에만 규정이 있는 것도 독특한 일입니다.
‘판공’은 ‘힘써 노력하여 공로를 갖춘 다음에 받는 성사’라는 뜻으로, 부활·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며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지요.
종교 박해 시기 사제가 공소를 방문해 신앙생활을 점검하고 고해성사를 베풀던 ‘판공’에서 유래했다 합니다.
그래서 매년 성탄을 맞는 대림 시기가 되면 그간의 죄를 씻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자는 의미로 판공성사를 합니다
단어의 뜻대로라면 공을 판단하는 판공인데,
죄인이 되어 죄를 고해하는 단어가 된 판공성사의 아이러니에 당황하는 신심 약한 날라리 카톨릭인인 저입니다만, 그런 제게도 어김없이 판공성사표가 전달됩니다
매년, 큰 벌 을 받을까 봐 정작 지은 죄는 고하지 못하고,
죄 아닌 죄로만 사함을 받다 보니
죄는 쌓이고 고해의 의미는 퇴색합니다.
그저 바라기는,
이런 판공성사로 세상의 죄들은 다 씼겨지고,
세상의 죄인들은 다 회개하여 평화의 세상이 되고,
이 세상에 죄인은 나 혼자 남아,
언젠가 올 심판의 날, 하늘의 판공이 편안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