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에서도 마냥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마냥 견뎌내기 급급한 한 해였다. 익숙하지 않은 팀 분위기, 처음 겪어보는 사건사고들, 다방면으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 어느 하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멈춰 서있는 기분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차들로 북적이는 고속도로 갓길에서, 언제 어떻게 차선에 끼어들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우물쭈물하고 있는 기분. 그렇다고 몸이 편했던 것도 아니다. 봄엔 발이 부러져 방에만 갇혀 있었고, 깁스 안에서 발이 불어 터지면서도 야근을 하며 일을 쳐냈다. 다치는 바람에 스트레스 해소구였던 운동도 오래 쉬었다. 오랜 시간 묵혀둔 디스크 때문인지 손이 저리기 시작했고, 업무 시간 외에는 의자에 앉아 타자를 치기가 어려웠다.
몸이 고장이 나자 이때다 싶었는지 마음도 고장이 났다. 아이디어 회의에서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요가 수업 중 바닥에 누워 잠시 호흡을 하다가 울어버리기도 했다. 이전에 해왔던 연애와는 다르게 남자친구의 잦은 야근이나 회식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렸다. 간혹 안정을 찾는 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절제가 되지 않아 주변에 미리 양해를 구해놓기도 했다. 회의 시간에 말을 저는 일이 늘어났고, 자신감은 바닥을 쳐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와 사회성을 소진하고 나니 집에 돌아오면 몇 시간이고 유튜브 알고리즘만 새로 고침했다. 그런 내 모습이 휴대폰 화면에 비치면 또 한 번, 내가 싫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글을 끄적이는 거 보니 괜찮아진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아직도 미래를 상상하는 게 무섭고,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을 엄두가 안 날 만큼 에너지가 없다. 그러니 글을 쓰는 건, 잘 견디고 싶어서다.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커지기만 하는 삶에 짓눌리지 않고, 잘 견디고 싶다. 조금 덜 짓눌리고 조금 덜 휘둘려서 육중해진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틀어 끌고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써서 뿌리를 더 깊이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인생보다 내가 더 무거워져야 한다. 글을 쓸 때만이라도 몸과 마음을 살피고, 뿌리가 어디까지 닿았는지 까딱까딱 움직여봐야 한다. 경주마처럼 달리는 다른 차들이 아니라, 내가 타고 있는 이 차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엔 갓길에 서 있는 상태라도, 마냥 불안하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