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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Apr 12. 2021

한자락의 봄, 자기만의 방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글을 쓰는 힘이 고갈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봄이다. 한 자락의 봄이 왔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잡지 교육원에서는 포트폴리오 작업이 한창인데 나는 빼꼼히 고개만 내밀어 포털 메인에 기사를 거는 동기들을 바라본다. 손끝에서 나오는 모든 문장이 건조하고 지루하다. 이제껏 글을 써오던 내 안의 어떤 힘이 사라졌다. 수업을 들으면 써야할 것이 계속 생기는데, 집에 도착하는 순간 방전된다. 내 안에 고갈된 영감을 채울 여력도, 없는 마음 박박 긁어 문장을 쥐어짜낼 기력도 없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아니라는 게 더 답답하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쓸 의지와 에너지가 없다.


등하교 길에만 스쳤던 봄의 단면을 꽤 깊숙이 더듬었다. 두번째 땡땡이다. 헐거워진 내 안에 뿌려지는 수업이라는 강한 물줄기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잔뜩 어그러진 엉성한 상태로 수업을 듣는 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전이라면 출석에 연연해 없는 에너지라도 쥐어짜 수업에 갔겠지만, 이제는 우선순위를 매겨 움직인다. 곰처럼 살던 내가 점점 여우로 변해간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글을 쓰는 힘이 고갈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요 근래 내가 쓴 문장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문장, 길거리에 널리 간판이나 표지판 같은 글이었다. 그런 글도 쓰는 게 기자의 역할 중 하나라지만 그런 문장에 뒤덮여 내 문장들이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안의 감정까지 날아가 버릴까봐.


자신만의 기사 스타일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이전에 글을 써오던 자신만의 동력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내가 글을 쓰던 동력은 나였다. 감정과 생각, 일상의 흔적을 기록했다. 글을 쓰며 그 시간을 다시 살듯 모양없는 기억을 활자로 붙들었다. 감정이 춤추듯 흐르는 글이 좋았다. 순간의 기록에 감정을 풀어넣는 글이 그리웠다. 확실히 기사와는 다른 톤의 글이다.


집에서 코앞이지만 언젠가 가겠다는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카페에 갔다. 평일 오전에는 유명한 카페조차 한가로웠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봄의 풍경을 바라봤다. 갑작스레 찾아온 벚꽃은 구경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모습을 감춰버렸지만, 봄의 빛깔은 벚꽃이 아니라도 찬연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떨어지는 꽃잎, 갓 차올라 파릇파릇한 신록, 각자의 색을 뽐는 봄꽃에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카페를 나와선 봄맞이 러닝을 갔다. 쨍한 하늘과 진한 복숭아 꽃의 대비가 눈을 사로잡았다. 한낮에 뛰다보니 땀날듯 더웠는데 스치는 바람이 부드러웠다. 그 바람을 만질수 있었다면 조금은 가벼운 벨벳 촉감이었을 테다. 작년 봄에는 산책이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엄마와 이곳 저곳 산을 다니고 이리 저리 산책코스를 부지런히 만들며 곳곳에 들어찬 봄을 만끽했었다. 같은 계절을 다른 방식과 모양으로 더듬고 있는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 묘했다.


예약해두었던 전시를 보러갔다. 한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VR 설치 작품 <무심한 연극>. 나를 위해 준비된 방에 앉아있다 어린 바다 거북을 따라,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를 슬픈 얼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상 세계에 새로 지어진 미술관, 바다, 대기실과 무대를 거쳤다. 대기실의 거울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나의 얼굴을 관찰했다. 내 안에 녹아있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태고적인 어떤 것을 찾기 위해서. 대기실을 나가 무대에 닿으며 연극은 끝났다.


오랜시간 나를 관찰해왔다. 감정과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자신을 더듬는 일이었다. 휩쓸리고 부딪히고 깎이는 일상을 산다. 때론 내가 누군가를 깎아낸다. 끝없이 출렁이면서 살아가야한다면 우리에겐 모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도, 마음 속에도.


오늘 하루, 봄 한 자락과 나만의 방을 스스로 선물했다. 놓쳤던 감각을 다시 불어넣었다. 왜 그리 메말랐던지, 왜 불안했던지 알게되었다. 내일 아침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어느덧 익숙해진 등교길을 걸을 테다. 비슷한듯 다른 하루가 이어지겠지만, 사소한 차이를 다르게 느끼는 내 안의 어떤 것을 회복했으니 나는,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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