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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Sep 17. 2021

올바른 선택

두산아트갤러리 Bumping Surfaces

두산아트센터, 김경태 개인전 <Bumping Surfaces>

퇴근길 문화생활. 회사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사잇길에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와 미술관이 가득한 종로에 직장이 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서는 전시를 보러 다닐 틈이 없다. 퇴근하면 운동, 밀린 집안일 하기 바쁘고 시간이 나더라도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면 굳이 피곤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 나이 든 이십 대 후반의 애잔함인지 현명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핑계로 이리저리 전시에 대한 갈증 채우기를 미뤄왔다.

그래서 가끔가다 마주치는 갤러리가 반갑다. 다만 두어 번 방문한 두산아트센터의 전시는 뭐랄까 조금 아쉬웠다. 온전히 작품이 주는 느낌보다는 옆에 붙은 설명이 강하게 다가온다. 말로 시각적인 자극을 풀어내려는 시도가 항상 나쁜 건 아니지만 현학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두산아트센터, 김경태 개인전 <Bumping Surfaces>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Bumping Surface, 부딪히는 표면들이란 뜻이다. 작가는 하나의 사물을 여러 방식으로 촬영한 뒤 하나의 상으로 빚어낸다. 여러 겹으로 맺힌 특정한 상들이 합쳐져 언제든 변화 가능한 유동적이고 불완전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조화를 촬영했지만, 비일상적으로 확대 촬영한 모습은 쉽게 꽃이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표면에 맺힌 상만으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셈이다.

올바른 선택이란 뭘까. 요즘은 유난히도 선택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잦았다. 퇴사 후 새로운 진로를 준비하는 친구,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 취업 준비를 이어가는 친구를 연이어 만났다. 어느새 첫 모임으로부터 1년이 지난 취업 스터디 동료들과도 연락이 닿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고민하던 진로 문제에서 누군가는 답을 찾았고, 누군가는 여전히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고민 중이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선택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과 선택을 떠올리며 과거 내 선택들을 떠올려봤다. 후회로 남은 나의 아쉬운 선택들을.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30년이 채 되지 않는 인생 동안 후회로 남은 선택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 적은 선택들이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끔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할 정도로.

​아쉬운 선택들을 돌이켜보면 올바른 선택을 위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지 대략적인 기준이 잡힌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후회를 남긴 선택들은 모두 성급한 마음이 빚은 결과였다. 선택에 뜸을 들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그다지도 쉽게 변하는 존재란 걸 몰랐다. 단편적으로 든 확신을 온전한 지표라 생각했다. 당시로선 그것이 최선이었을 테니 싶다가도 조금만 더 참아볼 걸,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걸 하는 아쉬움이 인다.

완벽한 선택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 새로운 눈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어떤 선택도 완전할 수 없다. 애초에 모든 선택은 미완성이고, 올바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끝없이 자라나고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생각을 담을 마음을 키우는 일 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부족함을 겪고 견뎌야만 커질 수 있다.

결국 올바른 선택이란 환상에 불과하고 매 순간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최선의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모든 시야를 담아 하나의 장면으로 풀어낸 '부딪히는 표면들'의 합. 흔들리는 빛이 모여 그려낸 인상주의 그림 같은 풍경. 그게 나름의 최선이자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나름대로 살면서 가장 오래 고민한 문제를 드디어 내려놓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선택이 후회로 남을지, 만족스러운 결과로 남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내 눈에 비친 풍경을 속속들이 모아 하나의 장면을 완성한, 최선의 선택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 최선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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