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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23. 2020

너와 함께 라라랜드에서 춤을 추고 싶어

008. 라라

내 또래 친구들은 외로울 때 결혼을 생각한다. 나는 외로울 때 고양이 입양을 생각했다. 애묘인들은 이걸 묘연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는 묘연을 만나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내 반려묘의 이름은 ‘라라’다. 얼굴이 엠마 스톤을 닮아서 보자마자 ‘너의 이름은 라라구나’라고 생각했다. 라라는 내게 일어난 가장 기적 같은 일들 중에 하나다.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동물복지에 둔감하던 20대 초반에는 고양이를 보고 싶어서 고양이 카페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곤 했는데 알레르기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실히 해두자 싶어서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해놓고 임시보호처에 입양 심사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모여 있는 임시보호처에 한 시간 정도 머무르자 갑자기 얼굴이 가렵기 시작했다. 목과 눈이 간지럽고 아팠다. 재채기가 나왔다. 며칠 후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 5 class였다.


내가 받은 검사는 MAST 알레르기 검사로, 피검사 한 번으로 93가지 종류의 알레르기 반응을 검사할 수 있다. 나는 총 네 가지 항원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다. 집먼지 진드기 두 가지 종류와 수중다리가루진드기라는 이름도 어마 무시한 진드기에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세 가지 모두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수치가 0.3, 3.5 정도로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계절이 바뀌어 옷장 정리를 할 때 재채기가 나오는 정도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내 고양이 알레르기 수치는 59.63으로, 단계로 치자면 총 6 class 중에 5 class. 즉, ‘위험’ 수준이었다. 의사는 ‘이보나 씨는 고양이를 반려할 수 없는 몸입니다’라고 선고했다. 신이 야속했다. 흔한 호두, 계란, 복숭아 등에도 알레르기 수치가 0이고, 심지어 개, 말, 기니피그, 양, 토끼, 햄스터 모두 0인데 유독 고양이에게만 폭발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고양이 입양 진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만들겠다는 꿈이 와르르 무너졌다. 비혼 주의자인 내가 유일하게 꿈꾸던 가족이 고양이었는데, 마치 난임 선고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고양이를 반려하고 싶다. 하지만 고양이를 반려하면 내가 위험해진다. 심한 경우는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한 동료가 고양이와 접촉했을 때 호흡곤란을 겪는 걸 목격한 적이 있어서 더 무서웠다. 고양이 알레르기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고 저주받은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과몰입은 내 장점이다. 정말 방법이 단 하나도 없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 해답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파고든다.

나는 결국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알레르기 면역치료’. 주사로 알레르기 항원을 조금씩 용량을 늘려가며 투여해서 몸을 적응시키는 치료라고 했다.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 주사 치료를 유지해야 하고, 중간에 중단하면 처음부터 단계를 다시 밟아야 할 만큼 방법도 까다롭다. 약값도 만만한 편은 아닌데, 나 같은 경우는 10회 주사에 약값만 50만 원, 그 외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진료비와 주사비를 따로 내야 했다.


선뜻 시작하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쨌든 방법을 찾은 것만으로도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나도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불행 중 다행으로, 알레르기 면역치료는 실비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치료는 효과를 장담하기가 힘들어요. 주사를 맞는다고 해도 전혀 효과가 없는 사람도 많고 5년 동안 무사히 치료를 받아도 치료 후에 다시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받으시겠어요?”


의사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내 결심은 확고했다.


“네, 받을게요.”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일주일’이라는 간격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에 가는 시간만큼은 사수했다. 알레르기 주사는 우리가 보통 맞는 ‘엉덩이 주사’나 ‘예방접종’과는 다르게 팔 안쪽 피부에 얇게 포를 뜨듯 바늘을 찔러 넣는다. 맞고 나면 이상 징후를 살피기 위해 반드시 30분 동안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주사 후에는 접종 부위가 굉장히 부풀어 오르고 멍이 들기도 한다.


처음 주삿바늘이 내 팔을 찌르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생각해버렸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만약 내가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나, 어떤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더 참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내 고양이를 떠올리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입양 전에 미리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떠올릴 고양이가 없었다. 매번 눈을 질끈 감고 주사를 맞았다. 제발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 시련만 넘으면, 나는 가족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가 고양이를 반려할 수 없는 이유는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세상은 내가 고양이를 반려할 수 없는 이유로 가득했다. 1인 가구라서, 결혼 적령기라서,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아직 임신을 안 해서, 아직 출산을 안 해서, 반려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고양이는 처음이라서. 지금까지 내가 나열한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SNS 속 귀여운 모습만 보고 섣불리 고양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할 때 하는 말이다.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됐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저 모든 이유에 더해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까지 있다. 입양이 쉬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인연을 믿고 묘연 또한 믿는다.

인생에서 기적 같은 만남을 몇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 정도에 꼽는 경험이지만, 그 인연들은 귀하고 빛난다.

그런데 묘연이라고 내게 없을 리 없었다.


나는 또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미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어떤 고양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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