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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27. 2020

익명의 방문자들

013. 방문자

어제저녁 갑자기 누군가 현관 벨을 눌렀다. 나는 이웃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편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다. 택배나 음식 배달은 모두 비대면으로, 남자 이름을 가명으로 써서 받고 ' 앞에 두고 가세요'라고 메모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우리 집 벨을 누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저녁 8시쯤 벨이 울린 것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 폰을 떨어뜨릴 만큼 놀랐다. 인터폰을 보니 마스크를  (물론 요즘 세상에는 마스크를   사람이  무섭다) 남자가  있었다. 잠시 집에 없는 척을 할까 고민했지만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쉽게 돌아갈 태세도 아니고  안에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밖에까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대문 너머로 외쳤다.


“누구세요?”

,    여쭤볼  있어서요...”


멘트가 수상했다.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겠지만 발음도 웅얼대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딘가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뭔데요?”

 혹시... ... 해외 택배  보셨나요?”


 말을 듣자 뭔가 중요하고 비싼 택배를 잃어버려서 찾으러 다니는 애처로운 어린 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을 빼꼼 열었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상대는 건장한 남자고 나는 조그만 여자다. 정말 고전적 방법이지만 현관에 남자 신발이라도 놔뒀어야 하는  아닌지 후회됐다. 혹시라도 집에  혼자 있는  들키기라도 한다면... 문 밖의 남자는 자신이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


“혹시 지난주 금요일에 하얀 해외 택배 상자 못 보셨나요?”

“여기 사는 분이세요?”

“아, 네...”

“죄송해요. 못 봤어요.”


남자는 우물쭈물하더니 알겠다고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제야 안도하고 문을 닫았다. 옆집 벨을 누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우리 집 벨만 누른 걸까? 나는 이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꾸 상상해봤자 무서워지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사는 일은 많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예전에 친구와 옆집에 살 때가 있었다. 그때도 비슷한, 아니, 훨씬 소름 끼치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함께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친구 P네 도어록에 껌이 붙어 있었다. 그냥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 악의적으로 꼼꼼하게 발라놓은 모양새였다. 우리는 갖은 욕을 하며 함께 껌을 긁어냈다. 당시 같은 층에 초등학생 공부방이 있어서 아마 아이들이 장난을 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애들 장난이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누군가 P네 도어록에 똑같은 짓을 해놓은 것이다. 이번엔 저번보다 훨씬 심하게 껌을 떡칠해놓았다. 우리는 겁이 났다. 누군가 씹던 껌을 떼어내는 것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짓이겨놓은 껌의 모양새에서 선명한 악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P는 경찰에 신고했다. 얼마 후 경찰 두 명이 도착했다.


경찰이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이거였다.


“혹시 최근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세상에. 나는 이게 경찰의 첫 질문이라는 데 놀랐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본 게 아닌 듯했다. 하지만 P는 당시에 남자 친구와 원만하게 잘 사귀고 있었다. 경찰은 그럼 최근에 누군가 호감을 표시한 적이 있는지, 고백을 거절하지는 않았는지,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없었는지 물었다. 모두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장난 같다고 말했다.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고 놀지 이런 장난 안 쳐요. 이건 명백하게 자기 좀 봐달라는 신호예요.”


소름이 끼쳤다. 경찰은 P에게 호감, 아니, 비뚤어진 관심을 가진 누군가가 한 짓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건물에는 CCTV가 없었다. P와 나는 처음 껌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주인에게 CCTV를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건물 주인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사이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주변 순찰을 강화하겠노라 하고 돌아갔고, P와 나는 거짓말로 ‘CCTV 촬영중’이라고 써붙여 놓았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껌 붙이는 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타났는데 아무 짓도 안 하고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타났는데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CCTV 촬영중’을 발견하고 욕을 하면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되어 우리는 이사를 갔다.


혼자서 산 지 이제 4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이사를 네 번 했고, 그때마다 집을 고르는 기준이 점점 까다로워졌다. CCTV가 있는지, 공동현관이 늘 잠겨 있는지, 창문 근처에 타고 올라올 만한 구조물이 없는지, 바로 앞에 가로등이 있는지 등등.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살기 무서운 세상이지만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일분일초가 위협으로 둘러싸인 삶이다. 부디 이 삶에서, 이 위험 속에서 내가,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기를 나는 바란다. 오늘도, 내일도 아무 일 없기를. 불쾌한 익명의 방문자들의 침입을 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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