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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25. 2020

엄마, 나 진짜로 담배 피운다구요

011. 담배

중고차를 사서 1년 정도 탔더니 타이어가 마모됐다. 카센터는 초보 운전자가 혼자 가기엔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기에 아빠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본가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아빠가 소주를 마시며 나를 반겼다.


“아이고, 왜 아침부터 소주를 마셔!”


그건 내가 매일 소주를 한두 잔씩 마시는 아빠에게 마치 인사처럼 건네는 말이었다. 아빠는 그때마다 ‘내가 많이는 안 마시잖아. 이게 내 유일한 낙인데...’하며 약간 삐친 듯한 말투로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날은 반응이 달랐다. 날 보고 소주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은 아빠가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야, 너는 담배 피우잖아!”


뭐라고요? 나는 순간 1초 정도 얼어 있었다. 당황했다. 나의 흡연 역사 이제 약 10년, 부모님이 절대 알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보수적이다. 인생의 반 이상을 아빠와 살아온 엄마도 역시 굉장히 보수적이다. 여자애가 담배라니. 안 될 말이었다. 만약 아빠가 내 흡연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 잡아다가 머리를 밀고 외출금지를 시켰을 거다. 아니라고 부정을 해야 하는데, 나는 당황을 하면 입에서 아무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어... 어떻게 알았지?”


황당하게도 입에서 자진신고가 나오고 말았다. 나는 조용히 아빠 옆에 가서 앉았다. 아빠가 또 소주를 한 잔 털어 넣더니 씨익 웃었다.


“진작에 알고 있었어!”


다시 한번, 뭐라고요? 진작에 알고 있었다니. 그런데 뭐죠? 이 생각보다 쿨한 반응은. 더 놀라운 일은 주방에서 안주를 내어오던 엄마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건넨 말이었다.


“너, 회사에서 상사들이랑 맞담배 피우고 그러지?”


헐, 또 한 번 뭐라고요? 왜 이렇게 쿨한 반응이시지? 이때부터 나는 부모님에게 흡연 사실을 들켰다는 사실보다 두 사람의 과하게 쿨한 반응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뭔가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두 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옮겼고,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세상에, 우리 부모님 생각보다 쿨하고 멋지잖아?

오랜 시간 흡연하다 금연에 성공한 아빠는 남동생이나 내 남자 조카들을 만나면 가끔 지나가는 투로 묻긴 했다. 너, 담배는 태우냐? 몸에 좋은 건 아니니 좀 태우다가 웬만하면 끊어라. 생각해보니 그때도 엄청 쿨했다.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 괜히 10년 넘게 혼자서 마음 졸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나는 부모님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두 사람을 모시고 떠나는 추석 여행이었다. 동생은 추석 연휴 때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함께하지 못했다. 그날도 아빠는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고, 운전은 내 몫이었다. 두 시간 정도 운전을 하고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배도 고팠다. 아빠는 차에 남아 있기로 하고 엄마와 함께 화장실부터 갔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나니, 담배 한 대 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 차에 먼저 가 있어.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게.”

“담배 피우러 가? 엄마도 같이 가.”


나는 흡연 사실을 들켰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진짜, 뭐라고요?


“무슨 소리야? 엄마가 거길 왜 가?”

“너랑 같이 피우지 뭐.”


헐. 정말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헐. 나는 조용히 엄마의 팔짱을 꼈다. 우리 엄마, 생각보다 장난 아니잖아? 팔짱을 끼고 흡연구역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엄마가 물었다.


“어디 가?”

“담배 피우러 가는데?”

“에이, 무슨 소리야.”

“응? 흡연구역 저쪽인데?”

“에이 장난 그만해. 얼른 차로 가서 출발하자.”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때 “하하, 웃기지? 얼른 출발하자!”라고 말하고 조용히 차에 타는 게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도 너무나 당황한 내 입에서 엄청난 말이 나오고 말았다.


“엄마, 나 담배 피우는 거 알잖아. 왜 그래?”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공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라도 난 듯했다.


“뭔 소리야.”

“아니, 저번에 아빠가 말했잖아. 나 담배 피운다고. 둘 다 알고 있잖아.”

“얘가 대체 무슨 소리야! 그건 그냥 농담한 거지. 니가 무슨 담배를 피우니?”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하하하, 장난이었어’라며 넘길 기회는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둘 다 다시 유쾌한 기분으로 차에 탑승하고 유쾌한 기분으로 목적지까지 가서 재미있는 여행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느라 숨죽이고 있었던 내 안의 반항아 기질이 갑자기 나의 ‘착한 딸’ 자아를 누르고 튀어나왔다. 안 돼, 너. 지금 아냐. 들어가. 이미 늦었다. 내 입에서는 폭격이라도 일어난듯 폭탄이 펑펑 투하됐다.


“엄마야말로 무슨 소리야. 나 진짜 담배 피워.”

“아이고, 장난 그만해라. 니가 무슨.”

“아, 진짜 피운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믿어?”

“야, 그럼 어디 한번 내놔 봐, 담배 보여줘 봐!”


휴게소 한복판에서, 웃지 못할 다툼이 벌어졌다. 서른이 넘은 딸은 ‘내가 담배를 피운다’고 언성을 높이고, 오십이 넘은 엄마는 ‘너 담배 안 피우잖아!’라며 지지 않고 반박하고 있었다. 이 무슨 이상하고 괴상한 싸움인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코미디 같고 시트콤 같았다. 하지만 언쟁이란 건, 일단 시작하면 이겨야 하는 것 아니던가? 나는 결국 가방에서 담배 파우치를 꺼내 엄마한테 보여줬다. 나의 승리, 엄마의 K. O. 엄마는 아까보다 더 흔들리는 눈동자로 담배를 쳐다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너한테는 담배 냄새가 안나? 아 그거? 전자담배라 그런가 봐. 그리고 주변에 피해 갈까 봐 냄새는 잘 관리해. 나는 이긴 자의 의기양양함을 한껏 눌러가며 대답했지만 엄마의 낌새가 수상했다.


“너 진짜 왜 그래.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여자애가 담배 피우면 안 돼.”


아, 절망.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여자애가 담배 피우면 안 돼.’ 이건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말이었다. 내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반응이었다. 엄마는 어쨌든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라며 신신당부했다. 나는 조용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내 입으로 투하한 엄청난 폭탄들 때문에 현실이 폐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다 망쳤어, 내가 다 망쳤어! 중간에 아니라고 부정할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데. 장난인 척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늘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후련함을 얻은 반면 엄마는 깊은 슬픔을 얻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발랑 까진’ 흡연자라는 사실이 엄마를 내내 괴롭히는 듯했다. 그날 밤 숙소에서, 아빠가 먼저 잠이 든 사이 엄마가 내 방으로 건너와서 말했다. 엄마 진짜 충격받았어... 많이 피우는 건 아니지? 끊어라. 여자애가 담배 피우는 거 보기 안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엄마와 논쟁을 해봤자 상처만 주게 될 게 뻔했다.


“끊을게.”


나는 ‘한 20년 안에는’이라는 뒷말을 삼켰다. 씁쓸했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그 시대를 살아온 보통의 부모님의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걱정하지 마, 엄마. 나 착한 딸이잖아.”


나는 이 사건을 K-장녀답게 마무리 지었다. 한 번쯤은 날 것의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었다. 사실 엄마 딸은 전형적인 K-장녀가 아니야. 나 사실 엄청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영혼이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꽁꽁 묶어 내 안의 뒤주에 처넣었다. 그리고 튀어나왔던 내 안의 반항아의 꿀밤을 때리고 다시 마음속에 꽁꽁 봉인한 후 ‘착한 딸’을 꺼내왔다.


엄마는 그제야 내 딸이 돌아왔다는듯 웃었다.


아, 이 사건을 장르로 규정한다면 코미디일 텐데, 왜 이렇게 뒷맛이 씁쓸한지 모르겠다. 농담을 다큐로 받은 대가일지도 모른다.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자. 내 안의 교훈 노트에 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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