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교묘한
012. 악몽
요즘 내 안에는 커다랗고 시커멓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생겼다. 특별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무언가 자꾸 입 안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갑을 챙겨 들고 편의점에 간다. 날씨가 좋다. 햇볕과 바람이 다정하다. 그런데 편의점을 몇 바퀴 돌아도 먹고 싶은 게 딱히 없다.
이상하게 말하자면 먹고 싶지 않은데 먹고 싶은 기분인 것이다. 가짜 욕망. 혹은 대리 욕망.
이 구멍은 낮에는 가짜 욕망 혹은 대리 욕망을 먹고 자라 밤에는 악몽을 뿜어낸다. 아주 악질적으로, 매일 같은 악몽을, 교묘하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 파멸시키는 악몽이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는데 브레이크에 발이 닿지 않거나,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계속 미끄러지는 악몽을 반복적으로 꾼다. 이 꿈을 몇 번이나 꿨는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운전은 내가 좋아하는 행위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고, 액셀을 밟으면 나아가는 규칙성. 내 몸보다 커다란 쇳덩어리가 나의 통제 하에 있다는 만족감. 그런 것들이 꿈에서는 모두 부서진다.
이 구멍은 어제 새로운 악몽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아주 교묘하고 잔인했다. 나의 고양이들이 차례로 아팠다. 아주 슬프도록 아팠다. 나는 이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케이지를 찾을 수 없었고, 누군가 찾아와서 막았고, 몸이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고양이들은 계속 아팠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턱이 부서졌다. 빨리,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꿈속에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수의사가 아닌 내가 다니는 병원 주치의가 동물병원 의사였다. 전화를 걸어 고양이가 다쳤어요, 라고 말했다. 피투성이 고양이를 안고 케이지에 넣으려고 했는데, 아이의 하반신이 없었다. 선생님 어떡해요, 하반신이 없어요... 어디로 갔는지 못 찾겠어요, 우리 고양이 다시 걸을 수 있나요, 하는 사이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집에는 먹을 만한 게 없다. 나는 이른 아침에는 쌀을 잘 먹지 못한다. 좋아하는 빵집의 치아바타가 나오는 아침 10시까지 뜨거운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몽롱함을 쫓는다. 그리고 꿈을 곰곰이 곱씹어본다.
과거 가장 자주 꿨던 악몽은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것이었고, 요즘은 꿈에서 자꾸만 고양이를 잃는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꿈에 반영되는 걸까?
어젯밤 꿈에서 나는 먼 타국에 있었다. 그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나의 고양이-라라와 모모-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이방인 신세가 지긋지긋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다.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임박했다. 라라와 모모를 모두 데리고 타려고 했는데, 탑승을 거부당했다. 반려동물은 한 마리만 데리고 탈 수 있으며, 태우더라도 화물칸에 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라라와 모모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전 둘 다 데려가야만 하는데...
끔찍한 건 이 상황에서 내가 머릿속으로 누구를 데려가고 누구를 두고 갈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속의 나는 승무원에게 애원하면서도 재빠르게 생각한다. 한 마리를 데려가야 한다면 역시 첫째일까, 둘째는 예민하고 겁이 많아서 수하물 칸에 타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겠지, 그럴 바엔... 아냐 잠깐, '그럴 바엔'이라니? 어떤 상황도 길에 버려지는 것보다는 나아,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경멸하며 또 잠에서 깬다.
가끔은 퇴사한 회사에 재입사하기도 한다. 퇴사했다는 사실을 잊고 나도 모르게 출근하기도 하고 어떤 사정 때문에 다시 입사하기도 한다. 나는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산다. 잠에서 깬다.
이제는 딱히 악몽을 꾼다고 해서 딱히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소중한 곳을 가장 아프게 건드리는 그 악마성이 밤이 되면 다시 무섭다.
그런데도 나는 쓸 데 없는 군것질을 멈추지 못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살이 찔 것 같아, 했더니 엄마가 괜찮다고 했다.
머리맡에 부적이라도 하나 붙여둘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