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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24. 2020

우리는 라라랜드에서 영원히 함께 춤을 출 거야

009. 다시, 라라

지난번에 이어지는 고양이 이야기다. 오늘 고양이 알레르기 주사를 맞고 왔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다가 이주일에 한 번씩,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맞으면서 ‘유지 치료’를 하고 있다. 사실 이 유지 치료 단계에서 맞는 주사가 가장 아프다. 주사 용량을 최대로 올려서 맞기 때문이다. 오늘은 유난히 주사가 아팠다. 그래도 나에게 복이 있는 건지, 좋은 의사와 간호사분들을 만나서 응원받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오늘은 주사를 맞을 때 라라를 생각했다. 나의 고양이.


알레르기 주사를 맞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양에 뛰어들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초보 집사라 성묘를 데려오고 싶었다. 어린 아기 고양이는 귀엽지만 초보가 돌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고, 무엇보다 귀여운 외모 덕분에 입양 기회가 많다. 반면 다 자란 성묘는 입양이 잘 안 되는 편이다. 하지만 입양 가기 어렵다는 성묘마저도, 사람들은 내게 입양 보내려 하지 않았다. 지난 회에서 열거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1인 가구, 미혼(이라고 그들은 말하지만 나는 비혼이다), 고양이 알레르기 등등. 구조자들은 ‘완벽한 4인 가족’에게 입양을 보내고 싶어 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내가 얼마나 이 입양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설명하고, 고양이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게 될지 집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어떤 고양이는 너무 데려오고 싶어서, 혼자 일기장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딸기였다. ‘딸기야, 네가 어디로 가든 넌 내 마음속의 첫 번째 고양이야.’ 지고지순한 짝사랑이었다. 하지만 나는 딸기 입양 심사에도 탈락했다.


그때쯤 강아지를 입양한 동료가 파양묘 입양을 추천했다. 이때까지 나는 주로 유기묘와 길고양이 위주로 보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키우다가 파양하는 사람들과 직접 연락해보라는 것이었다. 파양 쪽은 유기묘, 길고양이 입양판보다 허들이 낮은 편이었다. 나는 매일 반려동물 파양 사이트를 체크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반려동물을 파양했다. 결혼을 하게 되어서. 데려와 보니 알레르기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반대해서. 본가로 들어가게 되어서. 갑자기 그냥 사정이 생겨서. 마음이 아팠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바로 5분 전에 올라온 파양 글을 발견했다.


‘본가로 들어가게 되어 파양합니다. 3살이고 온순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을 사귈 때 좋아하는 취향이 있듯, 애묘인들에게도 좋아하는 고양이의 외모나 성격이 있다. 이걸 ‘로망묘’라고 부른다. 나의 로망묘는 하얗고 동글동글한 고양이었는데, 그 글에 있는 사진은 치즈색 고양이었다. 애교가 많은 성격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내 로망묘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문자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


‘아이 입양되었나요?’


파양 사이트에서는 대부분 입양이 선착순으로 이루어진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지만, 나는 제일 먼저 연락했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됐다. 얼굴이 납작한 동그라미 모양인 고양이의 이름은 ‘만두’였다. 나는 만두를 데리러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 봉천동까지 차를 몰고 갔다.


만두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엠마 스톤을 닮았어!’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눈, 시옷 모양의 새침한 입. 콩깍지라고 해도 좋다. 영락없는 엠마 스톤이었다. 라라는 적응력이 좋았다. 한나절 정도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더니, 그날 저녁이 되어서는 벌써 거실을 탐색하고 소파를 당당히 차지하고 누웠다. 나는 라라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아는지 궁금했다. 너를 3년 동안 키워주던 그 사람은 떠났단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대. 라라야, 그 사람을 많이 좋아했니?

나는 소파에 누운 라라의 눈동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라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두에서 라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금방 익혔다. 똑똑한 아이였다. 애교가 없지만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반드시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처음에는 의무감에 나오는 것처럼 어슬렁어슬렁 나오더니, 한 달이 지나자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어. 어디 다녀왔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라라를 데려오고 3주 정도 되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가장 심하게 올라왔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이 간지럽고 따가워서 눈을 뜰 수가 없고,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열린 창문으로 고개만 내밀고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무서웠다. 나는 라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집 안에 있는 패브릭을 최대한 치웠다. 물걸레 청소가 가능한 방수 러그로 바꾸고, 매일매일 두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이주일에 한 번씩 이불 빨래를 했다. 의사는 알레르기 주사 용량을 점점 높여갔다. 그리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금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 수치가 3 class 되는 사람 정도보다 알레르기 반응이 없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이제 라라의 눈만 봐도,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그건 라라도 마찬가지다. 내 눈빛만 봐도, 내 목소리 톤만으로도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알아듣는다. 물론, 알아들으면서 모르는 척할 때도 많다. 알레르기가 진정되어 조금 살 것 같았던 어느 날 밤, 나는 울었다. 라라와 함께 <라라랜드> ost ‘city of stars’를 듣고 있었다. 라라 옆에 있어도 몸이 아프지 않았다. 너와 나의 라라랜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우리가 만든 라라랜드에서 춤을 출 것이다. 언젠가 라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더라도 무지개다리는 ‘다리’이니까 우리는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결코 섬처럼 홀로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가 함께 만드는 삶과 삶 그 이후는 언제나 라라랜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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