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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Jun 30. 2022

분유 안 먹는 아기, 이유식도 안 먹다

이유식 먹이려다가 초라해지는 엄마 마음 

우리 아기는 분유를 참 지독히도 안 먹었다. 


다른 아기들이 분유를 200ml 이상씩 먹을 때,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160ml 젖병을 졸업하지 못했으니(160미리 이상을 먹지 못한다는 뜻) 분유를 참 많이 못 먹는 아기에 속했다. 


결국 이유식을 할 시기가 다 되어가도록 분유를 200ml 이상 먹지 못했고, 이유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분유는 잘 안 먹었지만, 이유식은 잘 먹지 않을까? 


분유 안 먹는 아기, 

이유식 잘 먹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하지만 이는 대단히 큰 착오였다. 


육아에 있어 예측은 절대, 절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유식 첫 날 미음은 잘 먹는 것 같았다. 


입도 잘 벌리고, 주는 족족 잘 먹는 것 같아서 "아, 이대로 성공인 건가"하고 나름 기뻤다. 


분유 잘 못 먹던 우리 아기 이제 이유식으로 살 좀 찌우겠구나 싶어서. 


그런데 3일차에 소고기를 섞어주면서부터 아기가 다시 '입꾹닫'(입을 전혀 안 벌리고 먹지 않으려 하는 것)을 시전했다.


고기맛 때문인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아기는 미음을 먹을 때와는 다르게 소고기 미음은 전혀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고구마 미음, 감자 미음도 만들어 보았지만 20일째 이유식 섭취는 답보 상태다. 


조리원 동기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우리 아기가 얼마나 못 먹는지는 더 명확하게 보였다. 


내가 만든 이유식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조리원 동기의 아기를 보며 '저렇게만 먹어주면 이유식 만드는 보람이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분유를 안 먹을 때는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 화가 난다. 


직접 만든 이유식을 버리는 게 아까워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이유식을 거부하는 그 모습이 얄미워서다. 


'한 입 좀 잡숴보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입 앞에 미음을 떠다 바치면 아기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는다. 그리고 손으로 숟가락을 잡아채 냅다 패대기친다. 


이 때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는데 여기서 '그래, 먹지 마'하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1차, 2차, 3차 계속 도전하지만 어떻게든 안 먹으려고(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숟가락에 담긴 음식물을 손으로 잡고, 그걸 온 얼굴과 몸에 묻혀서 이유식을 다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아기한테 화가 안 날래야 날 수가 없다. 


특히 온 몸을 배배 꼬면서 이유식 의자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고, 보리차를 먹을 때는 넙죽넙죽 입을 벌리면서 이유식을 먹을 때만 먹기 싫어서 진저리를 치는 아기의 모습을 매 끼니마다 마주하게 되면 엄마로서 이유식을 먹이려던 의욕은 다 사라지고 마음엔 분노만 남는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래, 너 좋다는 숟가락이나 실컷 갖고 놀아라'하고 숟가락을 내어주면 아기는 그것 또한 음식물이 묻은 숟가락 머리 쪽이 아닌 손잡이 쪽을 쪽쪽 빨아 엄마의 분노를 한층 업그레이드한다. 


"이유식은 잘 먹니?"라는 말이 

불러오는 스트레스 


상황이 이런데 양가 어머니들이 건네는 "아기 이유식은 잘 먹니?"라는 안부는 "너, 엄마로서 이유식은 잘 먹이고 있니?"라는 말로 들려 스트레스를 한창 가중시킨다. 


소고기 미음을 안 먹는 아기에게 "네 인생에 앞으로 소고기는 절대 없을 줄 알어"하고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미음만 잘 먹어준다면야 앞으로 뭐든 못 사주리. 


첫 술에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기에게 잔뜩 화를 내고 아이가 패대기친 숟가락과 음식물을 주섬주섬 치우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하, 그냥 분유만 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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