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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Jun 06. 2022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면 세상은 나에게 우호적이다.

임신한 여성, 어린이에게도 친절한 나라가 되었으면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면 겪는 현상이 있다.


바로 모르는 타인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여자들인 경우가 많은데 특히 어르신들이 말을 많이 거신다.


대한민국에서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모르는 타인이 나에게 친밀하게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고 생각하는데,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기를 데리고 지하철을 이용하던 날, 하루 동안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나 싶다.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선 당연히 엘레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어르신들과 엘레베이터를 함께 타게 된다.


할아버지보다는 특히 할머니들께서 아기에게 관심을 가지시는데 천천히 움직이는 지하철 엘레베이터를 같이 기다리다보면 유모차 안에 있는 아기를 발견하시고는 "몇 개월이에요?" "아기가 순하네" 등으로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


엘레베이터 시작된 대화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되고(주로 어르신이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역할이지만), 지하철에 탑승해서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아기와 함께 외출을 하는 동안 생기는 타인과의 대화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데만 왕복 기준으로 총 네 번의 엘레베이터를 탑승해야 하는데(밖에서 지하철 역사까지, 지하철 역사에서 플랫폼까지) 그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한 번은 내가 탄 역이 종점역으로 구분되는 역이어서 지하철 벤치에 앉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유모차를 보고는 "어머, 아기가 보채나보다"하면서 다가오셨다. 그 덕에 나와 같이 벤치에 앉아계시던 다른 여자분들까지 다같이 아기에게 관심을 가지며 대화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그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대화에 동참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신기했다.


이 모든 상황이 다 '아기'와 함께였기에 발생한 일이기 떼문이다.


반드시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말을 걸어오시는 분들도 많다.


"요즘 참 아기 울음소리 귀한 때지"라며 말을 먼저 붙이시거나, 아기에게 인사를 하는 분들 등등 다양하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경험이 참으로 오랜만이라(어쩌면 성인이 되고나서 처음이라) 생경했다.


미국에 잠시 살던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의 누군가는 항상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가 읽고 있는 책 재미있니?"라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횡단보도에 잠시 서 있는데 "네가 입은 옷 참 예쁘다"라며 상냥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한국에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버스 옆자리 사람에게 친밀히 말을 걸었다가 찬물같이 냉담한 반응을 겪고나서 '아, 여기 한국이지'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다. (유럽여행책인가를 보고 있던 여성에게 "유럽 여행가시나 봐요"라고 말을 걸었지만 그 분은 떫떠름해하셨다. 놀랐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아기와 함께있을 때 타인이 나에게 말을 거는 '우호적인' 경험을 여러 번 겪으면서 한편으로 아쉬워지는 감정도 함께 들었다.


아기를 뱃속에 품은 임산부들한테도 모두가 이렇게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임신 몇 개월이냐고, 무거운 몸으로 다니느라 힘들겠다고 따뜻한 말을 걸어주면 참 좋을텐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임산부배려석 앞에 임산부가 서 있어도 모르는 척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게 현실이다.


임신을 이미 경험한 기혼여성이건 미혼의 여성이건 혹은 남성이건, 어르신이건 가리지 않고 임산부배려석에 앉은 사람들은 배려석 앞에 선 임산부를 보면 '슥' 외면한다. 네깟게 힘들면 얼마나 힘드냐는 듯이.


노약자배려석에 앉아서 갈 때도 임산부인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기와 함께하는 지금은 오히려 유모차와 함께 서서 가겠다고 해도 "괜찮아, 여기 앉아"라면서 자리를 권유하는 어르신도 계시지만 말이다.


내 아이는 뱃속에 있었을 때나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나서나 똑같은 아기인데 이렇게 사뭇 다른 온도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뭘까. 세상 밖에 나오기 전까지는 환영받지 못하다가 아기로 사는 동안 '잠깐' 우호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자라 어린이가 되면 '노키즈존' 등으로 다시 환영받지 못하게 되겠지.


분명한 건,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 '지금은 참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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