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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Apr 05. 2022

유아차를 끌어보니 보도블록의 턱이 원망스럽네

유아차, 휠체어 모두에게 친절한 나라가 되었으면

12월부터 산후조리를 이유로 집콕생활을 한 지 어언 두 달.

봄이 스멀스멀 다가오자 밖에 나가고싶은 마음이 동했다.


조리원 동기가 아기를 유아차에 데리고 백화점 등 외출하는 것을 보고 "그럼 나도?!" 하는 마음도 생겼다.


아직 아기가 100일이 되지 않았지만 유아차에 태우고 조심조심 걸어나가봤다.


유아차가 흔들릴까 혹은 덜컹거림에 아기가 깰까 싶어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레 걸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걸어다니는 동안에는 미처 몰랐던 보도블록의 질감이 낯설게 다가왔다.


걸을 때에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보도블록의 불친절함이 생경했다.


매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중간중간 움푹움푹 패여 있어서 유아차는 덜커덩 덜컥 거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도로와 도로를 연결해주는 경사면은 생각보다 자주 유아차 바퀴에 턱턱 걸렸다.


이런 경험이 몇 차례 쌓이자 보도블록에 대한 몇 가지 인상이 생겼다.


- 대로변의 인도보다 좁은 길의 보도블록이 항상 상태가 더 안 좋다.

- 도로와 인도를 연결하는 턱이라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 유아차 바퀴는 언제든 걸릴 수 있다.

- 유아차를 끌 때는 약간이라도 울퉁불퉁한 보도블록보다는 매끈한 아스팔트의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낫다.


이와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유아차와 같은 이동수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바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다.


최근 지하철 4호선에서 벌어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가 연일 화제다. 시위는 종료되었지만 시위 기간 내내 사람들은 "왜 출퇴근하는 일반인을 볼모로 이런 시위를 하냐"고 불평했다. 이준석은 이 시위를 비판하며 윤석열과 선거 운동을 다니던 시절 장애인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뒤집었으며, 결국 김예지 의원은 장애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은 이 사회에 없는 것처럼 가려져 일상생활에서 휠체어 탄 분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쩌다 지하철에서 정도? 저상버스가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태껏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누구 목격하신 분 목격담 좀...)


그랬기 때문에 2000년 초 미국 LA에 잠시 살면서 보았던 광경들은 부러웠다.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대기하고 있으면 버스기사는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가장 먼저 탑승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버스기사가 어떤 버튼인가를 누르면 출입문 쪽에 휠체어가 올라올 수 있는 경사면 같은 것이 '철커덕'하고 생기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전혀 서두르지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천천히 탑승한다.


버스에서 하차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누구도 장애인 때문에 버스가 늦는다고 불평하지도, 눈을 흘기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비장애인이어도 항상 버스기사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내리고 빠르게 탑승해야만 하지 않던가) 버스기사와 승객 모두가 장애인의 탑승과 하차에 함께 협조하는 모습, 장애인 탑승자를 위해 유독 더 친절하게 미소짓고 말 거는 버스기사를 보며 선진국과 비선진국을 구분하는 건 이런 차이라고 생각했다.




유아차에게 불편한 곳은 휠체어에게도 똑같이 불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보도블록이 아니더라도 두 다리로 걸었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유아차를 끌 때만큼은 진입장벽으로 다가온다.


우리동네에서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 커피를 마시러 갈 수 있는 곳은 쇼핑몰 안에 있는 스타벅스가 유일하다. 스타벅스는 문턱이 없다. 그래서 유아차를 끌고 가도 무리가 없다.


반면 일반 카페는 유아차의 진입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감성의 개인 카페를 가고 싶지만 번번이 포기한 이유는 항상 입구에 한 발자국 내지 두 발자국을 딛어 올라가야 하는 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가커피, 매머드 익스프레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다르지 않다. 카페 입구가 유아차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끔 디자인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장 밖에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게 최선이다.


유아차는 그래도 대안이라도 있다. "무조건 나는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셔야겠다"면 유아차는 잠시 밖에 세워두고 아기를 안고 가게에 들어가면 된다. (가게 밖에 방치되어 있는 유아차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런데 장애인은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유아차를 끌다가 수많은 턱들에 화딱지가 나면, 나에게는 유아차를 끌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그런 선택지조차 없다.


선택지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비장애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턱'을 없애주고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그 노력에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15년 전 미국에서 느꼈던 부러움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이 된다면 유아차도 휠체어도 더 이상 '턱'이 두렵지 않고, 수많은 '턱'들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유아차를 끌 때면 생기는 진입장벽들, 나는 오늘도 내가 입장할 수 없는 곳들로는 애초에 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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