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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Jul 13. 2023

머리숱 없는 18개월 여아의 비애 "형 말고 누나라고"

머리숱 없는 여자아기로 산다는 것 

우리딸은 머리숱이 없다. 정말 없다. 


주변의 다른 아기들이 8~9개월 이후부터 머리가 찰랑찰랑 여자아이답게 변하고, 머리를 묶기 시작할 때도 우리딸은 여전히 머리숱이 없는 상태였다. 


"확 밀어버릴까?"


이런 고민을 안 했던 것도 아니지만, 아이의 머리를 '빨리 자라게 하자'는 이유로 밀어버리는 것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일 것 같았다.


왜 그러지 않나. 강아지들도 털을 몽땅 미는 미용을 하고 난 후에는 굉장히 수치스러워하고 불쾌해한다고. 


그렇게 돌이 지나고 어느덧 18개월이 지났는데도 우리 아이는 여전히 머리숱이 없다. 


이렇게 머리숱 없는 여자아이로 지내다보면 늘 받게 되는 오해가 "아들이에요? 딸이에요?"라는 질문이다. 


특히 이 질문은 절대 지인에게서는 나올 수 없고 길을 걷다가 혹은 놀이터에서,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등 다수의 행인에게서 듣게 되는데 질문의 의도는 이러한 거 같다. 


머리털이 없고 생긴 걸로 봐서는 분명 아들인데 '아들이냐'고 콕 찝어 말하면 안 될 거 같으니까 '아들이냐, 딸이냐'고 물어보는 느낌. 


그래도 어르신들이 이렇게 "아들이냐, 딸이냐"라고 묻는 건 동방예의지국에서 충분히 이해가능한 범위이다. 


오히려 엄마 마음에 비수를 꽂는 건 동년배, 혹은 30~40대 엄마들이 "아들이에요, 딸이에요?"라는 질문 필터링조차 거치지 않고 바로 내뱉는 이 말이다. 


"어머, 형이네. 형아다 형아"


병원에서 대기를 기다리다가 혹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동육아방에 아이랑 같이 놀러갔다가 무방비로 이말을 듣고 나면 그저 나는 미소만 머금게 된다. 


"아이, 몇 개월이에요?" => (OO개월이에요) => "어머 형아다 형아"


이 단순한 3단 논법으로 전개되는 대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대방 엄마의 "형아 따라해봐~" "어머, 형아는 저것도 잘하네?"와 같은 유사 언어폭행(?)으로 이어진다. 


아들을 둔 엄마일 경우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딸을 둔 엄마가 내게 저런 말을 할 때면 나는 더더욱 말이 없어지고 소리 없는 미소를 띄게 된다. 


특히 상대방 엄마의 아이가 내 눈에도 그닥 여자아이답지 않은 외모일 경우에는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여러 개 뜬다. 


'대체, 이 자신감은 뭐지???'


당신의 딸도 특별히 여자아이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왜 우리 애에게만 '오빠'라고 하는지 왠지 모르게 억울한 마음도 든다.


18개월 내내 '아들' 오해를 받고 있는 내딸아, 머리 좀 자라자. 


엄마가 어떻게든 열심히 머리 땋아주고 묶어줄게. 응? 


여아일까요? 남아일까요?
아, 우리딸 참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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