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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Aug 11. 2023

복직할까 말까, 둘째 낳을까 말까

"이제 5주차에요"

"제가 딸 둘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둘째 임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결혼을 할 때만 해도 "아이는 무조건 둘 낳아야지. 형제 자매가 필요하다고"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어느덧 첫 아이의 육아휴직을 한 지 1년 6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휴가까지 합하면 거진 2년을 출산과 육아, 쉼으로 보냈던 지난 날들. 거의 2년 가까이 회사를 쉰 셈인데 요즘 스멀스멀 걱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분명 첫 아이 육아휴직을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내 나이도 있고 하니 마흔이 되기 전에 아이 둘 낳고 복직하면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공공기관을 다니는 덕분에 아이 한 명당 육아휴직이 3년씩 나오니 초등학교 1학년 때 반드시 필요하다는 '육아휴직 1년'을 제외하고 아이당 2년씩 총 4년을 육아휴직 쓰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둘째 계획은 소원해져만 간다.


내가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너무나도 돈과 힘이 많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돈부터 먼저 생각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지만 냉혹한 현실은 나 대신 아이를 키워주지 않는다.


복직과 동시에 시작되는 등하원 도우미는 어떻게 할 것이며, 외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양가 조부모님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자영업을 하시는 시어머니와 요양보호사를 하는 엄마, 둘 중의 한 명은 하던 일을 내려놓으셔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첫째만 키운다고 생각했을 때는 문제가 훨씬 쉽다. 아이가 둘이 되는 순간부터 조부모님의 직업 박탈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더 나아가 조부모님이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오셔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동네의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 자식의 아이를 봐 주러 아파트 바로 옆동으로 혹은 바로 옆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오는 것처럼 말이다.


둘을 키우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블라인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둘째는 사랑이라느니 둘 낳으라고 하는 부모들 다 현재 미취학 자녀들이다. 둘 낳으면 사교육비가 한 달에 얼마인지 아냐? 실전은 취학 이후부터다"라는 쓴소리 댓글이 가끔 보인다.


경제적 문제도 걱정이 되지만 나에 대한 확신도 없다. 내가 과연 아이 둘을 기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갓난 아기는 아기띠를 한 채로 첫째랑 놀아주러 나온 엄마들간혹 본다. 나는 지금 20개월 딸이랑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둘째를 업고 나와서 애랑 놀아줘야 하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힌다.


성격도 다혈질인 내가 아이 둘을 사랑으로 키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 부모님조차 "너는 너 기분 좋을 때는 OO(첫째)한테 너무 잘하는데, 기분 안 좋을 때는 못하더라"라고 말하신다.


내가 과연 체력적 힘듦을 이겨내고 아이 둘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선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하기가 힘들다.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오프라인상의 모든 대세 여론은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낫다"이다.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낳더라고요. 지금 낳으세요" 혹은 "나중에 나이 들고 '왜 젊을 때 둘째를 안 가졌을까'라고 후회하더라고요"와 같은 얘기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게(혹은 낳지 못하는 게) 기본값이 되어 버린 사회, 아이를 낳더라도 한 명만 낳아 기르는 게 시대의 흐름이다 보니 '애는 그래도 둘이 있어야 해'라는 나의 사고방식이 구시대의 구전을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이전 세대 혹은 내가자라왔던 환경에서 학습된 사고방식이 '애를 둘 이상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괜시리 외로워 보이고(물론 아이들의 곁에는 같이 놀아주는 엄마나 아빠가 반드시 있지만) 초등학생 자녀와 엄마, 아빠가 셋이서 나란히 가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내 눈에는 허전해 보인다. '저기에 왠지 한 명이 더 있어야만 가족이 풍성해보일 것 같아'라는 게 지독한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4인 가족에 대한 환상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4인 가족이라고 반드시 행복할까? 3인 가족이면 덜 행복할까?


아이가 형제가 있으면 반드시 좋을까? 없으면 안 좋은 걸까?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고 행복은 가족구성원이 몇 명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둘째의 환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재밌는 건 그 누구도 나에게 둘째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거. 양가 부모님이 둘째를 원하시는 상황도 아니고 아빠는 오히려 "OO(첫째)이 하나만 잘 길러도 돼. 둘 낳으면 너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니? 이제 너도 사회생활하고 네 생활을 찾아야지"라고 말하신다.


얼마 전 패키지투어로 유럽여행을 다녀오신 아빠는 투어에서 만난 한 가족이 인상적이셨는지 내게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패키지투어 멤버 중에 대학생 딸과 함께 가족여행을 온 부부가 있었는데 세 명이서 호텔 한방을 같이 쓰고 여행 기간 내내 온가족이 재밌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보였다고 하셨다.


"너 자랄 때와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 달라. 엄마아빠는 너네 키울 때 학원비도 거의 안 들었어.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둘을 키우려 그러니.

형제자매 있다고 다 사이 좋은 것도 아냐. 너희 가족 셋이서 나중에 해외여행 다니면서 경제적 부담 없이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둘째에 대한 고민만 하다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이미 둘째를 낳을 사람은 낳았고(조리원 동기가 바로 연년생 아들을 가졌듯이), 둘째를 가질 사람은 가졌다.


끝나지 않은 둘째 고민에 '이럴 바에야 차라리 조기 복직을 신청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누가 나에게 답을 좀 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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