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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린 Apr 24. 2022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누군가 정해놓은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솔직하게! 나답게 살자!


“하...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 


 K-Drama에서 빠지면 섭섭한 대사 한 줄이지만 요즘 들어 이 한 문장이 이렇게나 와닿을 수가 없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이 다가오고, 이루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우울하던 날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우울함에 빠져서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부정당한 것 같아 서러웠고, 드라마에서나 듣던 대사를 실제로 들으니 그다음 대사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다운 게 대체 뭐지?’


 나다우려면 내 맘대로 우울하지도 못해?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순간조차도 나를 늘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는지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야지” 라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서러워하다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진짜 나다운 게 뭐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어떨 때 우울해지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단 하나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10대, 20대 때는 정말 나다운 것보다 남들이 기대하는 내 모습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남들에게서 듣기를 좋아했다. “나는 어떤 이미지야?” “나는 뭘 잘하는 것 같아?” “내 장/단점이 뭐야?” “나한테 어떤 스타일이 잘 어울려?” 같은 종류의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들에 나를 맞춰나갔다. ‘남들이 볼 때 나는 이런 이미지이고, 이런 성격의 사람이구나. 그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의식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어떤 평가는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평가들은 오히려 내 생각대로 맘 편히 행동할 수 없도록 프레임을 씌웠다. 그 예시로 동료들에게 호의적이라는 회사의 평가 때문에 내 영역이 아닌 일도 거절하지 못하고 나서서 떠안기 일쑤였고, 그놈의 MBTI가 E(외향형)라는 이유로 조용히 혼자 쉬고 싶은 날에도 억지로 모임에 나가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그렇게 때때로 나 자신을 속여가며 ‘남들이 기대하는 나의 이미지’에 맞춰 살던 어느 날,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우울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의 눈에 쉽게 우울해지지 않고 늘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 나였고,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오히려 내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기뻐해야 하는데 기쁜 마음은커녕 진짜 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이런 기분이 드는 진짜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자존감이 떨어져서일까? 우울증 초기 증상인가? 번아웃이 온 건가? 스스로는 답을 내리기가 어려워 ‘자존감 높이는 법, 번아웃 증상’ 따위의 키워드를 유튜브에 검색하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명언과 책 구절들을 밤새 읽었다. 


 그러다 ‘진짜 자존감, 행복, 성취감이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들어가 보았다. 해답은 ‘자신의 생각, 행동, 말이 일치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무엇 하나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있지 못해서 이토록 우울했던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만을 그리고 좇으며 그 모습에 들어맞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면 무시하고 부정해 왔다. 생일을 까먹은 친구에게 무척이나 서운했어도 일일이 신경 쓰는 건 쿨해 보이지 않으니까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갔고, 모처럼 찾아온 휴일을 혼자 보내는 건 외로워 보이니까 쉬고 싶어도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가 느끼는 진짜 감정조차 잃어버릴 것 같아 이 프레임을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요즘은,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내릴 때 남에게 맞춰줄 수는 있어도 최소한 나를 속이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쿨한 사람, 활발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 온전한 나로서 나를 돌보면서 사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 대한 질문에 남들이 해줬던 대답만큼 스스로 명확한 답들을 내리진 못했지만, 열심히 나와 친해지고 있다. 나도 아직 나를 알아가는 중인데, 과연 나다움을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하루하루 나와 더 많이 대화하며 나다워지기로 했다. 다시 누군가 나에게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묻는다면, 내 다음 대사는 이것으로 하겠다. 


“난 지금 최고로 나다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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