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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의 계곡을 지나는 법

[우울증 환자 생존기] 오늘도 하루, 더 버텨본다.

by 마담 J

여러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가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으며, 누군가는 인생의 계획을 세웠고, 누군가는 병을 회복해갔다.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날이 좋아서 행복했지만,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다. 마음이 가라앉고, 몸도 주저앉으려는 것을 추스려서 겨우 붙잡고 있다. 가을에 시작한 일을 아직도 마무리를 못 짓고, 일을 해야 한다는 다짐만 수십번, 실제로 일은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일을 시작하기까지가 쉽지가 않다. 그 가운데에서 전혀 다른 업종의 새로운 일이 시작되고 있다. 마무리와 시작을 겹쳐서 진행하게 되었다.


대체로 나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잘 찾는 편인데, 이번주의 일련의 일들과 그에 따르는 내 심경의 변화는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몇 날을 생각해봐도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친한 언니는 '슬픔'의 일종일 거라고 했다. 슬픔과 두려움과 부담감과 죄책감 등이 어우러진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고, 컨디션 점수도 많이 떨어지지 않고 꽤 좋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하루 종일 하나의 감정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좌절감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감정들이 찾아왔다가, 다시 그 시체처럼 지내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나를 물 밖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참 쉽게 지나가는데, 낮 시간은 대체로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의미없이 계속 쇼핑사이트를 훓어보면서 시간을 지내는데, 뭔가를 막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불안한 마음을 새로운 물건을 보면서 순간적인 관심으로 돌려보려는 심산이다.


독서모임 3개중 한 개가 끝났고, 한 개는 다음주에 끝난다. 당분간 남은 하나의 독서모임만 참여할 계획이다. 모든 독서모임에 100% 충실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독서모임을 통해서 그나마 흩어지는 생각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시간을 가지면서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1주일에 2챕터 정도를 읽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3시간 안쪽이라는 것이고, 그러면 책을 좀 더 어렵지 않게, 한 권을 모조리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느리더라도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그나마 지금의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다.


한동안 감기에 걸려서, 몸이 힘들었고 꽤 회복이 되었는데도 몸이 많이 피곤하다. 그래서 자꾸 눕고만 싶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은 대체로 허비하며 보내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밤이 되어 남편이 잠들면 나도 가서 눕고 싶다. 일을 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다고 해야겠다. 본격적인 보고서 쓰기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점인데, 쓰기에 진입을 못하고 있다.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빠르게 일처리를 해나가야 하는데 그 동력을 못내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과 한 사람의 치매가, 그리고 벌써 50년 가까이를 살았다는 자각이,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한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 시간에 충실한 것 말고는 다른 명제는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멀리 보고 가야할 곳을 바라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 나는 어느 곳으로도 목적지를 두고 있지 않다.




몸이 계속 안 좋다. 며칠 째 공황장애 필요시 약을 추가로 먹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등과 어깨, 목, 머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 보고서 압박감 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몸이 힘들다. 반신욕도 하고, 낮잠도 자고, 스트레칭도 하고, 먹는 것도 줄이는데도 계속 아프다. 몸과 마음이 같이 내려앉는 중인데,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노력중이다. 뭘 먹어도 속이 좋지 않다. 한동안 잘 먹다가 소화가 되지 않아서 소화제를 연속 먹고, 배고플 때만 한입 먹고 있다. 고기를 최근에 많이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고기를 좀 줄여봐야겠다.


우여곡절 끝에 보고서 작업을 시작했다. 오전에는 저혈압이 왔나 싶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오후에 혈압과 맥박이 정상인 걸 확인하고서는 '그래. 공황이야. 안 죽어' 하고 약을 먹고 억지로 일을 시작했다. 시작이 어렵지, 끝내는 건 쉽다. 그냥 하면 된다. 어제는 팔을 들 힘도 없어서 남편이 머리를 말려줬는데, 오늘은 그래도 몇 시간 앉아서 일을 했다.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일만 남았다. 다시 기운을 내서 일을 해야겠다.


꾸준함이란 질과 양이 모두 동일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질과 양이 동일하지 않더라도 매일 해내는 것. 그것이 꾸준함이라고 한다. 위안이 된다. 어떤 식으로든 매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렇게 또 다시 삶을 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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