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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겠는 내 몸과 마음

[우울증 환자 생존기] 아직 괜찮지는 않은가 보네

by 마담 J

감기를 시작한 3월 중순 이후로 회복과 악화가 반복되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통증이 있는 게 아닌데 그래도 온 몸이 너무 아팠다. 잘 때 땀이 나고, 열이 오르고, 무기력했다가, 손발이 차고,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관절이 욱신거리는데, 정신과에서 갱년기 검사와 몸 전체 건강검진을 먼저 받아보고 몸에 이상이 없다면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산부인과 검진을 했고, 산부인과에서 증상은 딱 갱년기인데 호르몬 이상이 없으면, 자율신경계 검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호르몬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종합건강검진 예약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신청해두었다.




건강검진 예약을 하면서 마음검사 문진서를 작성했는데, 질문에 답하다보니 내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구나 싶었다.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안 좋을 일이 없다. 그냥 평탄한 하루들이 간다. 두봉 주교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고, 엄마의 요양보호사 면접이 있었고, 연구는 피드백을 기다리다 계속 늘어졌고, 새로운 일은 조금 미뤄졌지만, 그래도 꽤나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우울감과 무기력, 체력저하, 약간의 공황이 한꺼번에, 혹은 수시로 찾아들었다. 몸도 마음도 이유를 모르겠다.


5월이면 퇴사한지 1년이다. 다채로운 일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도 6가지나 했다. 독서모임도 여러 개 하고, 몇 년만에 식물을 다시 키워보려고 씨앗들도 들였다. 크리스마스 파티, 연말 파티, 새해 파티라며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밥도 먹었고, 30분 쓰기라는 새로운 루틴도 생겼다. 컨디션 점수는 20점대에서 30점대로 올랐고, 등락의 폭도 많이 줄었다. 새로운 부활을 맞이했고, 새로운 성경공부도 시작했다. 내가 아직 할 수 없는 것과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남편과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이제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일도 하나 더 시작할 예정이고, 아직 못 만난 친구들과의 만남도 남아있다. 최근에 만난 친구들은 내가 다시 얼굴에 활기도 돌고, 적극성도 생기고, 건강해졌다고 진심으로 기뻐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건지,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건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일단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밥도 듬뿍 먹는데, 에너지는 10년 쓴 핸드폰 밧데리처럼 한 나절이면 바닥이다. 1년 반만에 술을 한잔 했더니 코밑에 딱지가 앉고, 혓바늘이 올랐다. 날이 아름다울수록 행복한데, 돌아서면 기운이 없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유없이 너무 아프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이는데, 정말 괜찮은건지 모르겠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느 우울증 환자가 그렇듯이 늘 밝게 웃고, 애교 넘치는 말투로 친절하게 말하고, "잘 될거다"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에너지가 제로다.




새로운 일은 불특정 다수를 만나고, 자주 사무실을 나가야 하는 일이다. 남편은 내가 건강하게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새로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또 내가 아프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데 요즘 같아서는 자신이 없다.


보고서도 너무 늘어져서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지치고, 힘들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유도 모르겠고, 앞으로의 일들도 모르겠지만 그냥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적어도 죽고 싶어하거나 자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극복을 해왔다는 건 알겠다. 힘들고 또 힘들어도 그냥 묵묵히 현재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건 알겠다. 머리로는 알겠다. 그런데 알고싶다. 왜 이렇게 힘든건지 알고 싶다. 그래야 내가 원인을 제거하거나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답답하거나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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