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몸이 기억하는 우울증은 계속 살아난다
지난주의 분노가 감정을 흔들어놓았다. 어쨌든 마음으로든 생각으로든 누군가가 죽기를 바랬으니 편할 리 없다. 고해성사를 봤다. 신부님께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직도 그 상처가 나는 아프구나 싶기도 하고, 죄를 죄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미사 내내 많이 울었다.
몇 일 뜻없이 기분이 종종 가라앉았다. 프로젝트가 난관에 부딪히면서 그런지, 힘들었던 지난 날의 분노가 올라와서인지, 어쨌든 기분이 자꾸 바다 속으로 끌려내려갔다. 어제는 자려고 누워서 묵주반지를 돌리며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내가 시체처럼 하루종일 누워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에 보고나간 그 모습 그대로 불도 키지 않고, 퇴근한 남편을 맞이하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24시간 넘게 그냥 그대로 누워있던 나. 남편이 걱정하다 못해 한숨을 크게 쉬며 부엌을 치우던 달그닥 소리를 들으면서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던 나. 물 속에 잠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 그런 나를, 나는 몸으로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지. 시체처럼 몇 일을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그냥 누워있기만 하던 때가 있었지.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출근을 하면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땀이 나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데, 영혼은 가출한 채로 운전을 하면서 약을 털어넣던 순간이 있었지. 그렇게 몇 년을 살았지.
자해를 하고, 베란다와 옥상에 올라가고, 수면제를 그득 먹던 때가 있었지.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런 세월은 다 지나간 과거이고, 과거는 흩어져서 없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그 기억들을 불러내었다. 남편이 내가 혼자있을 때 죽을까봐 걱정된다던 시절을 나는 다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없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흔적을 남겼다.
무릎에 아주 어릴 때 생겼던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성인이 되서도 그 상처가 없어지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니 희미해져 있더라. 30년도 더 걸렸다. 우울증을 앓은지 20년이 넘었다. 그 중에 10년은 상담을 했고, 5년은 투약을 병행했다. 이 상처들은 언제 없어질까. 죽기 전에는 없어질까.
자살을 하지 말라는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자살할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살하지 않고도 생이 빨리 마감되기를 기다린다.
무기력을 이기기 위해서 밥을 챙겨먹고, 매일 만년필로 글을 쓴다. 사탕도 먹고 초콜릿도 먹는다. 산책도 나가고, 책모임도 한다. 깜깜한 물 속에서 꼼짝없이 가라앉아 있던 몸의 기억이 다시 나를 잠식하지 않게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본다.
이전 회사에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 그들과 밥 한끼를 먹으려고 했는데, 당분간 거리를 둬야겠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을 괴롭히지 말자. 누군가의 원수가 되지 말자. 이렇게 몸이 기억하는 상처를 남기지 말자. 그러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은가. 이 고통과 괴로움을 세상에 남기는 일은 하지 말자. 가슴이 타는 듯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