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난 꿈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땐 댄서, 가수, 초등학교 선생님. 중학생 땐 연예인, 판타지 소설 작가,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고등학생 땐 여 형사가 나오는 미국드라마에 푸욱 빠져서 한동안은 경찰, 형사, 프로파일러가 나의 꿈 목록에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개중에 댄스 가수가 정말로 하고 싶어서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장기자랑은 다 나가고(실은 중, 고등학교 모든 축제 때도) 항상 친구네 집에 가서 친구들과 춤 연습을 했다. 중학생 때는 해리포터에 푹 빠져서 제2의 J.K. 롤링이 되겠다며 판타지 소설을 정말 열심히 썼다. 수업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소설을 썼고 글쓰기 좋아하는 친구와 바꿔 읽는 재미로 학교생활을 보냈다. 고등학생 땐 “캐슬”이라는 미국드라마에 푸욱 빠졌었는데, 사고뭉치 남자 추리소설 작가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뉴욕 NYPD 여 형사가 너무 멋있어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프로파일러가 되겠다며 범죄심리학 관련한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왜 형사가 아니라 프로파일러였냐고 물으신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저질체력상 건장한 성인 남성을 때려눕히지는 못할 거라고 판단한 차선책이었다.)
어떨 땐 꿈이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바뀌어 ‘내가 이걸 정말로 하고 싶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슴을 정말로 뛰게 하는 꿈이었다면 그거에 미쳐있느라 이렇게 쉽게 다른 것에 한눈팔 수는 없다고. 그래서 난 이상하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나는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학창 시절에는 언제나 나의 '소명(召命)과 같은 직업'이 내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나의 소명과도 같은 직업!! 그 하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 꿈은 갑자기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날까?
둘째, ‘소명과도 같은 꿈’이 정말 있을까?
셋째, 꿈은 ‘하나’ 여야 하나?
아니다. 꿈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꿈이 짜잔! 하고 나타날 거라고 누가 말했는지.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조금씩 좋아하고 관심 있던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까 그중에 어떤 게 꿈이 되는 거였다.
나는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중에서 ‘더’ 좋아하는 것에 자연스레 시간을 쏟다 보니 그걸 더 잘하게 되고, 그걸 더 잘하고 싶어서 욕심이 생기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은 뭐야?”,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꿈을 ‘한 개’로 한정 짓는 습관이 생겼다. 꿈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나는 학창 시절에 나의 가슴을 제일 뛰게 하는 ‘소명과도 같은 직업’, 그 ‘하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줄곧 난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하고 싶은 것도, 꿈도 많은 사람이었다. 20대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여전히 눈만 감았다 뜨면 하룻밤 사이에 하고 싶은 게 계속 생겨나고 내가 이룰 수많은 꿈이 눈앞에 그려져서 설렌다. 서른이 코앞이지만 아, 이만큼 좋은 나이가 없다! 또 다른 도전을 향해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다. 예전엔 서른이 되면 아침저녁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지하철에서 회사를 오고 가는, 남들 다 가는 인생을 나도 어쩌지 못하고 따라갈 거라 생각했다. 근데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도전할 것이 산더미다. 인생이 너무 재밌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없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한 가지만 담기에는 너무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원씽은 없지만 대신 평생을 좋아할 자신이 있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글은 나를 살아나게 만들고 춤은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그리고 나에겐 무한한 꿈을 품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더없이 소중한 제자 아이들이 있다.
꼬꼬마 시절의 아이들은 우주비행사, 대통령, 과학자, 우주정복 등 오색빛깔 찬란한 꿈들을 품는다. 그 무한한 꿈을 가졌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꿈이 없어지는 광경을 본다. 어쩌면 어른들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질문들은 아이들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로막게 하는 질문임을 내 경험을 통해 이제는 안다.
하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한창 무한한 꿈을 꿀 초등학생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을 줘서 말한다. 대신 딱 하나, 이 점을 명심하라고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찾을 것, 공부 성적보다 사소하게라도 나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게 어떤 것이 있었는지 집중하며 느낄 것. 이것을 나의 아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에게는 네 주위를 잘 둘러보면 네가 모르고 있었지만 좋아하던 것들이 꽤 있을 거라고, 그러니 마음의 소리에 잘 귀 기울여 보라고. 꿈이 많다고 말하는 아이에게는 꿈이 많아서 축하한다고, 그러니 나와 함께 하나씩 다 이뤄가자고 말하는 선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증명할 수 있다. 현재의 시점을 살아가는 나는 결국 어린 시절 품었던 그 모든 일을 다 하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