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에 사는 엄마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고속도로가 막힐 시간을 피해 새벽에 도착한 길, 짐을 푸는 사이 엄마와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었다. 조그만 발을 붙잡은 채로 아이들 발치에 웅크려 잠든 엄마. 새벽녘, 작은 집에 맴도는 훈기에는 손주들 먹이려 폭 고아둔 미역국 냄새가 배어 있었다.
잠든 엄마를 바라보았다. 몸집은 어린애처럼 조그마한데, 주름은 할머니처럼 자글자글해진 엄마. 잘 거면 좀 편하게 자지. 엄마도 참. 이불을 끌어 덮어주었다. 문득 지인이 해준 학창 시절 숙제 이야기가 떠올랐다.
30년 전쯤인가. 남고에 다닐 때야. 나이 지긋한 한문 선생님이 계셨어. 한문은 인기가 없던 과목이라서 수업 시간에 딴짓하거나 엎드려 자는 애들이 태반이었어. 선생님은 그래도 서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고 하셨지. 자신은 충실히 수업을 준비할 테니, 너희도 너무 대놓고 딴짓은 하지 말자고. 간혹 그런 친구들이 보이면 다가가 안아주면서 ‘사랑해’라고 말해주셨어. 오죽하면 애들이 차라리 때려 달라는 거야. 뚝뚝한 남고생들에겐 사랑과 포옹이 체벌보다도 강력했으니까.
어느 날은 한 친구가 선생님의 포옹을 뿌리치더니 이런 거 좀 하지 말라고 대들었어. 그날, 선생님은 한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숙제를 내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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