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세렌디피티, 기회는 행동하는 자에게 온다.
"어휴 더 이상 못 다니겠어. 이런 회사 더러워서 그만둬야지."
"나를 찾는 곳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가 뭐가 아쉬워서 여기 다니는데?"
주변에서 아마 이런 류의 얘기를 심심찮게 들어봤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그만두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리고 퇴사를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유의 퇴사를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 '성공적인' 퇴사/이직을 하는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게, 그리고 조용히 움직인다. 어쩌면 그들의 최종목적은 현재 회사를 떠나는 것보다, 다른 데 있었던 것 아닐까?
떠난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퇴사하는 순간은 언제 나에게 찾아오는 걸까.
그런 순간이 있다.
성장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어느 날, 한밤중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은 나를 알아줄까?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큰 세상의 중압감에 나의 미미함이 느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 무력감이 들면, 갑자기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싹 사라진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외부환경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내가 문과생이지만 생전에 들어본 적 없는 파이썬(Python) 코딩을 정말 열심히 배워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했다고 치자. 차별화된 스킬을 갖고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길 것을 예상했지만, 갑자기 파이썬이 아닌 다른 코드가 유행한다면? 이제 챗gpt가 코딩을 다 해준다고 더 이상 파이썬도 배울 필요가 없게 된다면?
(물론, 배우는 노력 자체에서 오는 경험이 나의 장기적인 자산이 되겠지만,) 그만큼 외부 환경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외부환경에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소위 '운'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멘트 중 하나는 '운이 좋았다'이다. 왠지 그들만 갖고 있는 것 같은 운이 부럽기도 하고, 내가 가진 운과 비교해 보면 운의 퀄리티가 조금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저렇게 말하는 게 겸손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오히려 괜스레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냥 하는 말이지 뭐, 정말 운이 전부겠어?"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될 것은 바로 그 질문 "정말 운이 전부겠어?"이다.
'운'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외부환경 중 하나이다. 외부환경이 그 사람에게 순풍을 실어줬기 때문에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특별한 '운'이 발동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이 준비되기 위해 밟아온 과정들, 셀 수 없는 시도들, 만났던 사람들은 '운' 이외에도 행동력이 필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즉, '운'이 발동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은 확실히 개인의 노력이다. 마치,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복권을 사야 되는 것처럼.
행운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 책 '부의 원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은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예시는 3M의 포스트잇이다. 원래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던 연구원의 세미나에 참석한 3M의 동료 연구원이 '찬송가 책에 책갈피처럼 쉽게 뗐다가 붙였다가 할 수 있겠다'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런 우연한 과정들이 현재 우리가 쓰는 포스트잇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포스트잇의 개발은 단순히 '외부환경'에서 오는 '운'이었을까?
만약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세미나에서 연구원 간의 교류가 없었다면?
3M 조직 내에서 혁신을 지지하는 문화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도 결국 세렌디피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점들의 연속(connecting the dot)이라고 얘기하는, 이 점들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을 크게 3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봤다.
1. 성장 (Growth)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이다. 내가 속한 분야에서의 전문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전문성은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을 모두 포함한다. 이 부분은 이전 글에서 소개한 포트폴리오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2. 정체성 (Identity)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성'이다. 무분별하게 성장하는 것에만 초점이 있는 사람은 번아웃이 오기 쉽고, 외부의 설득이나 자극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이것은 다음 항목인 '연결'에도 영향을 미쳐서 내가 누구를 만날 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외부의 자극보다는 보통 '사색' (=self reflection)을 통해 이뤄진다.
3. 연결 (Connection)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는 네트워킹. 약한 연결 (=Weak tie)의 확장이라고도 한다. 연결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연결되고, 나에게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가 새로 생기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거나 확장할 기회를 얻는다.
그림에도 나오듯이, 세렌디피티는 3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발현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네트워킹을 많이 하더라도, 내가 가진 전문성이 없으면 서로 좋은 관계는 맺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성장으로의 연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는 전문성이 있더라도, 네트워킹이 넓지 않으면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줄어들고, 그만큼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세렌디피티(=기회)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세렌디피티의 3가지 조건 모두 행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앞서 포트폴리오에 대한 글에서 나눈 얘기처럼, '퇴사' 혹은 '이직'이라는 결정은 나의 성장의 '과정'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장'에 초점을 두면서 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다 보면 어떤 시점에 자연스럽게 결정 내릴 때가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퇴사가 아닌 경우에도 충분히 조직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조화롭게 연결되고 있을 수 있다.
현재 저자는 영국 런던 소재의 Bayes Business School에서 MBA 학생들에게 데이터 분석 교육을 가르치는 Visiting Lecturer이자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위에서 말한 세렌디피티가 연결되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3년 전, HR Analytics 팀이 회사에서 처음 발족한 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페이퍼를 하나 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처음 지원해 봤던 Text Analytics Conference in London이었다. 당시 open AI의 chatGPT 발표 이전, GPT 모델의 근간인 Transformer를 활용한 다면평가 관련 감정분류를 회사에 적용한 사례로 발표했었다. '운이 좋게도', 콘퍼런스에서 만났던 교수님 중 한 분께서 먼저 적극적으로 박사과정에 대한 권유를 주셨고, 그렇게 영국의 박사과정을 고민하게 됐다. 가족은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우리 가정의 원칙 아래, 아이가 셋이면서 박사과정으로 해외거주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운이 좋게도' 영국 학계에서는 실무 경험과 특히, 양적 연구(quantitative) 관련된 수요가 많았기에, MBA 학생들 대상으로 데이터분석과 시각화 강의를 하는 visiting lecturer의 조건으로 이동을 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를 의도적으로 여러 번 쓴 것에서 느꼈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운'은 가만히 있을 때 발현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세렌디피티의 3가지 조건 (성장, 연결, 정체성) 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운 좋게 '퇴사'가 발생한 것이고, 나는 여전히 '행동력'으로 이 3가지 조건을 열심히 굴려가며 또 다른 '운', 즉 세렌디피티를 기대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본다.
"그래서 지금이 나가야 되는 시기인가요? 지금이 바로 그 세렌디피티 시점인가요? "
시점은 본인이 정해야 하겠지만, 완벽한 조건을 기대하면 움직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은 tradeoff(=거래)다.
직장이라는 안정성을 내려놓으면, 시간의 자유와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겠지만 재정적인 불안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직장이라는 안정성을 지키고 싶다면, 재정적인 안정을 얻겠지만, 시간의 자유와 개인이 추구하는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직장에서 시간의 자유와 개인이 추구하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해 주면서 개인의 콘텐츠 혹은 겸업을 허용하는 조직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나 자신이 그 정도 반열에 오를 네임밸류가 있지 않다면 조직에서 이런 기회를 줄까 싶기도 하다.
송길영 작가가 '호명사회'에서도 얘기했듯이 불확실성이 없는 완벽한 최적화를 여러 번 시뮬레이션하다 보니 현대인들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잡는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 그 길을 갔다는 것이다.
현재 필자는 불확실하지만 나의 정체성을 쌓아가는 그 길에 들어섰고, 적어도 하루하루 세렌디피티를 기대하며 묵묵히 내 길을 가기에 ordinary(평범)하지만, surprise 한(놀라운) 하루를 살고 있다.
이런 세렌디피티를 기대하는 여러분이 혹시 계시다면, 자신의 성장과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면, 비슷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날 수 있는 오픈카톡방 '이직학교'에 초대한다.
'이직학교' 오픈채팅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