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반려인의 그릇된 행동
20년 이상, 반려견 두 친구와 함께 살고 나서 되돌아본 시간들은 대부분이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무식해서 그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던 후회들이 많다.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때 다시 키우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랴.
둘째가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고, 현재시점에서도 여전히 반려견은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두 달 동안 바닥을 치고 살아 돌아온 나는, 지금 20대 때 가장 부지런히 살던 시절을 다시 꺼내 부활시키고 있다.
그동안 이 녀석들 핑계 대고 뭉개고 있던 많은 것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서 다시 리셋하고, 하루가 꽉 차도록 생활하고, 저녁 잠자리에 들 때는 거의 잡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냥 피곤해서 쿨쿨 잠에 빠져드는 일상.
어찌 보면 아주 행복한 일상인 것 같다. 맞다. 솔직히 하루하루의 삶이 만족스럽다. 딱 하나 강아지가 없다는 것 빼고!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하며 모아둔 강아지들 사진을 보는데, 그날 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식인데, 오늘은 유독 저 핑크 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한 동안 뭉실이가 애기 때는 저렇게 밥을 줬는데 지금 강형욱 님이 저걸 봤으면 나를 야단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저렇게 밥을 줄 수 있어? 했지만 저 때 고백하자면 물그릇도 같이 쓰고 그랬다.
하루는 실이가 욕실에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오길래 무슨 일인가 갸웃했는데 알고 보니 욕실에 상수도 패킹이 느슨해져서 거기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받아놓은 물바가지가 있었는데 세상에 그 안에 담긴 물을 맛있게 찹찹찹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생수를 먹였는데 따라놓은 물을 안 먹고 수돗물을 먹는 뭉실이에게 괜히 잔소리를 해댔다.
"뭉실아, 수돗물 먹으면 안 된다. 언니가 생수 마시라고 떠놨는데 야가 와이카노."
그 이후로도 실이는 욕실 문만 열려있으면 그 물을 마시고 몰래 나오는걸 몇 번 들켜서 내가 잔소리를 했는데 잠깐 동안 우리 집에 친한 선배언니가 머물렀던 때가 있었다.
회사를 다녀온 나에게 언니가 " 너 혹시 뭉실이 깨끗한 새물 좋아하는 거 아나?"라고 말했다.
난 그게 무슨 말인지 멀뚱멀뚱 언니를 쳐다봤는데, 언니의 말인즉슨 뭉실이는 애초부터 뭉치랑 같이 마시라고 아침에 따라두고 간 물은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욕실에서 계속 똑똑 떨어지는 새물이 좋다는 거지. 생각해 보니까 따라둔 물은 그냥 고인 물에 뭉치가 마시고 먼지도 들어갈 수 있고 하루종일 그 물이 그냥 그대로라면 솔직히 나라도 싫었겠다. 나 같아도 안 먹을지도 모르는 물을 나는 당연히 개들은 먹을 거라 생각했나? 두 마리를 키우면서 왜 물그릇을 하나만 해줬을까?
그 뒤로 물그릇을 하나 더 해주고, 욕실에서 가끔 마시고 나오는 실이를 더 이상 야단치지 않았다.
뭉치가 떠나고 실이 혼자 남았을 때도 물그릇을 항상 신경 써서 확인하는 습관은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실이는 깨끗한 새물을 좋아하니까. 뭉치가 워낙 아무거나 잘 먹어서 개는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뭉실이는 은근 취향이 있는 강아지였던 것이다.
깨끗한 물을 좋아하고, 블루베리는 통으로 주면 절대 안 먹고 절반을 잘라서 향이 나면 먹고, 억지로 입에 넣어도 입안에서 맛없는 음식이라면 바로 뱉어버리고, 사료그릇에서 기가 막히게 영양제 정도는 골라내버리는 아주 취향이 강한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뭉실이가 나는 너무 좋았다.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나 역시 취향이 뚜렷하고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개가 아무나 좋아하고, 아무거나 막 먹고-물론 그런 친구들도 좋지만-하지 않고, 무언가를 구분해 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뭉실이가 떠나고 옷장정리를 하면서 또 발견한 뭉실이의 옷과 여름용 아이스방석을 보며 개도 참 남기고 가는 게 많구나 싶다가 싱크대 상부장을 보니 물그릇만 네 개나 있더라. 실이가 좋아하는 깨끗한 물로 자주 바꿔주려고 나도 참 많이 노력했구나 싶어서 오늘은 너무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