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실 에피소드 1-자두 씨 삼킨 사건
뭉실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일 년이 채 안되었을때였을거다.
나가기 위해 화장을 하면서 바쁜 직장인까진 아니라도 어쨌든 출근시간이 있는 직장인이었으니까 아침은 항상 왠지 모르게 분주했다.
일어나서 씻고 옷 갈아입고 화장을 하면서 강아지들 밥 챙기고 물 챙겨야 하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그날이 사실 정확히 출근 준비를 위한 건지, 그냥 외출 준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화장을 하면서 자두를 먹었다. 왜 굳이 화장을 하면서 자두를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두인 후무사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그 맛있는 걸 먹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은 내가 자두를 먹는 모습을 내내 아주 관심 있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침대 바로 옆에 붙어있던 화장대에 앉아서 나는 화장을 하면서 자두를 한 입 먹었다. 그걸 뭉실이는 침대에 올라가 화장대 옆에 앞 발을 올리고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잠시 물러나있었다.
나는 화장을 마치고 후무사도 거의 다 먹어 휴지에 씨를 뱉어 두고 갑자기 뭔가를 가지러 가기 위해 휴지에 올려둔 자두씨를 그대로 화장대 위에 둔 채 정말 1분이 안 되는 시간을 잠깐 자리를 비웠다.
아...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너무 아찔하고 괴롭다.
돌아온 자리에서 뭉실이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고 화장대 위에 사라진 자두씨를 발견한 나는 사색이 되었다.
심증은 있는데 확실하게 실이가 먹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자두 씨가 위장을 통과해서 이 작은 녀석의 소장을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길로 외출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다.
역시나 내 심증이 맞았다. 그 길로 뭉실이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마취를 하고 위장을 절개하는 수술을 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자두 씨가 끝이 너무 뾰족해서 소장을 통과하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하셨다. 어쨌든 위장에 있을 때 꺼내서 다행이긴 하지만 수술을 하는 동안 내내 기억의 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내 부주의한 행동을 탓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뭉실이를 수술해 주던 선생님이 갑자기 수술방으로 들어와 보라고 해서 무슨 일 있은가 하고 들어갔는데, 혓바닥이 쭉 빠진 뭉실이가 배가 갈린 상태로 누워있으니까 조금 놀랐는데 선생님은 "괜찮아요. 피 하나도 없고 안 났어요. 뭉실이 언니, 자두 씨가 안에 있고 뺐는데 마취한 김에 중성화 수술도 고마 해뿌까요?"
너무 짧은 순간에, 안 해도 될 수술을 한 것도 충격적인데 갑자기 중성화수술까지 하라니... 위장도 꿰매고 실이의 자궁도 드러내고... 내가 아무리 이 아이의 보호자라도 뭔가 너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이의 중성화수술은 조금 나중에 해줘야지 생각하던 차여서, 게다가 내 실수로 배를 가르고 위장까지 절개했는데 장기까지 드러내는 수술을 하기엔 너무 잔인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분명 느낌이지만 말이다.
나중에 다시 하는 게 더 나은건지 지금 해버리는 게 나은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의학적으로는 어쩌면 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냥 이건 너무 비인간적인 느낌이었다. 우선은 내 탓으로 안 해도 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중성화까지는 실이에게 너무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자고 일어났는데 얼마나 황당할까..(이건 충분히 내 감정이 이입된 거다)
어쨌든 깔끔하게 수술은 잘 끝났고, 실이는 빠르게 회복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다시 실이는 일주일 만에 실밥을 뽑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난 그 뒤부터는 절대로! 자두를 먹지 않았다.
적어도 강아지 있는데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