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의 영혼 Sep 18. 2023

두 번째 맞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익어간다

풍요의 계절이 무르익어 간다.

한낮의 무더위가 가을을 무색하게 하더니 이제 더는 기승을 부리지 못하고 슬쩍 꼬리를 내린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온갖 작물을 부지런히 심어 놓았으니 이제 결실을 거두어들일 때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초보 농부의 겁 없는 질주는 여전했다. 작년처럼 고라니한테 전부 다 바칠 수 없으니 작물 주변에 해태망을 둘렀다. 효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넘지 않다가 최근 들어 넘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부지런히 넘어와 땅콩잎과 콩잎을 따먹었다. 하여 땅콩은 조금 일찍 수확해 버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알도 단단해지고 더 많이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땅속 열매는 두더지가 지상의 잎은 고라니가 노리고 있으니 더 많은 양을 포기했다.


콩은 아직 수확기가 아니니 더 지켜 볼일이다. 고추도 작년만큼 성공하지는 않아도 일정량 수확을 하고 있다. 비가 잠시 멈춘 사이 거두어들인 고추는 건조기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태양초가 된다. 도시로 돌아오면 햇살 잘 드는 아파트 베란다가 시골 마당이 다.


한여름 장마철도 아닌데 며칠째 비가 퍼부었다가 쨍하고 해가 나오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흐린 날이 이어진다. 가을 햇살이 며칠만 제대로 쏟아진다면  작물 건조하기에 더없이 좋을 텐데 말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리저리 궁리한 결과다. 비가 내리면 선풍기 바람과 돌침대로 햇빛을 대신해 건조시키고 있다.

한 줌 가을 햇살이 간절한 빨간 고추

수확해 도시로 돌아오면 일은 산더미다. 옥수수는 잘 영글었지만 때를 놓쳐 알이 딱딱해져 쪄먹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들통에 넣고 한 번에 푹 쪄서 이웃과 나누었다. 다들 맛있다고 좋아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물만 부어 쪘어도 강원도 찰옥수수의 쫀득한 맛에 자꾸 손이 간다.


말라버린 옥수수는 버려야 하나 했더니 아랫집 어르신이 말려서 뻥튀기하면 된다기에 집으로 가지고 왔다. 옥수수 알갱이 분리 작업을 하다가 둘이서 손가락 관절염 생기는 줄 알았다. 끝내고 보니 커다란 소쿠리 두 개에 소복이 담길 만큼 양이 엄청나다. 세상에! 이 일을 둘이서 수작업으로 하다니 놀랍다.

재래시장 가면 빼놓지 않고 강냉이가 손에 들린다. 그만큼 좋아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많은 양을 전부 뻥튀기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뻥튀기 말고 옥수수 알갱이를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그렇지 카레 만들 때 캔옥수수를 사용했으니 이걸 익혀서 넣어도 되겠다 싶어 당장 점심에 먹을 카레 만드는데 넣어 보았다. 맛이 괜찮았다. 앞으로 카레 할 때마다 옥수수 알갱이 추가해 먹겠다며 한 봉지를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그 정도 덜어낸 걸로는 표도 안 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옥수수 차도 있지 않던가.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옥수수 차의 효능과 더불어 알갱이 덖어 차로 활용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은 옥수수 알갱이 차를 사서 집에서 주전자에 넣고 차를 끓여 마셨던 기억도 난다. 일상에서 티백도 흔히 이용했고 편의점에서 물 대신 옥수수차도 사 먹곤 했다. 그런데 막상 윈물인 옥수수 알갱이를 접하고는 어찌할바를 몰라 이렇게 당황하다니.


옥수수 알갱이 덖어 차로 만드는 과정


밖으로 나온 옥수수수염은 잘라버리고 속에 있는 수염은 모아서 씻어 말리고 있다. 옥수수 수염차가 될터다. 옥수수 알갱이는 깨끗이 씻고 건조한 후 덖다 보니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시나브로 아침저녁 선선해지는 기온에 몸이 반응을 한다. 커피를 밀어내고 구수한 향이 담긴 따듯한 옥수수 차 한잔을 떠올린다.


밭에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손질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과정과 수고를 거쳐야 비로소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다니 새삼 옥수수차 한 잔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하다.


가을 햇살을 기다리는 작물들

빨갛게 익은 고추는 고춧가루가 될 테고 풋고추는 조림 볶음 장아찌 부각 등 다양한 으로 식탁에 오른다. 새롭게 배워가며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살림에 관심도 없고 음식 만드는 거에 흥미도 없던 내가 새삼 재미를 붙이고 있다.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 대하장편소설집을 멈추지 앓고 끝까지 읽는 재미도 솔솔 하다.

늘 분주하게 보냈던 예전 같으면 한 두권 읽다가 몇 달이 자나야 다시 손에 잡거나 그대로 중단해 버리기 일쑤였다. 마음은 있어도 독서할 시간이 없었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 관리도 소홀하지 않는다.


6개의 SNS 채널을 운영했고 손 안의 네모상자는 분신처럼 가까이했다. 이 모든 것들을 멈추고 멀어지며 생긴 시간적인 여유와 자유로움이 가져다준 새로운 일상들이다.


그래서 뭐 어떻다고? 뭔가 살짝 긴장감은 필요하다 싶지만 많은 걸 내려놓으니 자유롭고 편하고 좋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이 일을 하는 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