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엄마 보고 싶어…

<2025년 4월 24일 저녁 · 다받아 고물상 2층>

by 부지깽이

민주의 사무실은 온갖 전자기기와 복잡한 전선 대신, 아늑한 캠핑장으로 변해 있었다.

한쪽으로 밀려난 작업 공간 뒤편,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다섯 개의 캠핑의자와 접이식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엔 군침 돌게 푸짐한 접시들이 가득했다.

모둠회 두 접시, 보쌈과 족발의 압도적인 대짜 위용, 그리고 반짝이는 황금빛 유리병—발렌타인 30년산 700ml 한 병이 오늘 밤의 무게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었다.

옆에 쌓인 소주와 맥주는 마치 “나도 껴줘!”라며 줄을 선 병사들 같았다.


그리고― 회 접시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다들 고생했다. 오늘은 맘껏 즐겨라.」

지금 이 순간, 레인보우 헌터스의 첫 회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잔이 부딪치고, 회 접시는 금세 비워지고, 족발이 해체되었다.

정겨운 농담이 술잔처럼 흘러넘쳤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탄은 소주를 물처럼 원샷했고, 민주는 맥주에 회를 곁들여 먹었다.


9시쯤 되자, 안주가 동났다.

민주가 일어섰다.

“기다려! 안주 좀 더 만들어올게.”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양헌이 능청스레 손가락 하트를 쏘았다.

작고 기묘한 심장이 허공에서 팔랑였고, 민주는 그걸 보고 질색을 했다.

“꺼억…”

양헌이 크게 트림을 했다.

민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빈 맥주캔을 들어 양헌의 이마를 향해 던졌다.

‘깡!’ 소리와 함께 맥주캔이 이마에 명중했다.


하지만 양헌은 이맛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싱글벙글 웃었다.

민주가 캐비닛을 열고 숨겨둔 과자 두어 개를 집어든 찰나―

어디선가 산적같은 손이 툭 튀어나와 남은 과자 봉지를 싸악 쓸어갔다.

“야!!!”

민주가 소리쳤다.

양헌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에게~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주의 손에 들린 새우깡 봉지가 날아와 팡! 양헌의 뺨에 정통으로 꽂혔다.


양헌은 이번에도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력과 윤이 배를 쥐고 웃었다.

윤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쳤다.

“쇳덩 오빠, 바보 같아! 언니가 그렇게 좋아? 호호”

력도 숨을 헐떡이며 둘을 놀렸다.

“하트 날리는 사람한테 캔을 집어던지다니… 누나는 너무 터프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웃음이 잦아들 즈음—

탄이 기어코 외쳤다. 혀끝이 살짝 꼬부라진 소리였다.

“에라이~ 나쁜 동생들아! 노총각 앞에서 이 무슨 추태야? 응? 쇳떵! 삼실 뛰어가서 꼬불쳐논 양주나 갖고 와!”

흐흐 웃던 양헌이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예썰!!”

그리고 쿵쾅쿵쾅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잠시 후, 쿵쿵대는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그의 두 손엔—

캡틴큐, 그리고 나폴레옹!

이름만 들어도 속이 쓰리다는 그 술.

력과 윤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한 병 다 마시면 다음날 저녁까지 안 깬다’는

전설의 술 두 병이 양헌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니들 오늘 다 죽어 봐라’ 하며 웃는 것 같았다.

“야, 쇳떵! 너 진짜 미쳤냐?”

“그걸 왜 아직도 갖고 있어?”

탄과 민주는 타박했지만, 력과 윤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말로만 듣던 저 술을 마셔볼까?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섞인 눈이었다.


10시가 되자, 술도 과자도 다 떨어졌다.

나폴레옹군은 전멸했지만, 캡틴큐는 뚜껑만 땄다 다시 닫혔다.

민주가 먼저 일어섰다.

기지개를 쭉 펴며,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넘겼다.

“난 먼저 들어가 잘게. 조금 더 마시든가, 뻗든가 알아서 해.”

그리고 사무실 구석 작은 방 쪽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한 마디를 던졌다.

“꼬맹이들 다 치우고 자라. 저 철딱서니 오빠는 밖에 내다버리고…

푸핫! 호호! 히히!

한 박자 늦은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철딱서니 오빠는 뒷목을 긁으며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슬쩍 탄 쪽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님, 우리 한 잔 더 합시다. 내 사무실에 몇 백년 전에 죽은 나폴레옹이 30년째 자고 있거든요.

탄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동생들을 쓰윽 훑고는 말했다

“그래, 가자. 오늘은 끝장을 보자.”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나서 사라졌다.

그 밤, 다섯 사람은 함께 웃고, 떠들고, 마시고, 던지고 받았다.

술잔이 비워지고 안주가 동나는 동안,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피로를 잊었다.


* * *


노땅 셋이 사라지자 젊은피 쌍둥이가 말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력은 의자 아래 널브러진 빈 병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족발 뼈가 들어 있던 접시 위에 놓인 소주병, 살짝 눕혀졌던 맥주캔들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았다.

과자봉지, 젖은 냅킨, 종이컵들은 다른 봉지에 따로 모았다.

분리수거는 지구를 살리고 자신을 살린다고… 그렇게 배워 왔다.

윤은 앞치마를 둘렀다.

작은 싱크대 앞에 서서, 컵과 접시들을 쓱싹쓱싹, 야무진 손놀림으로 씻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잘 나오네.”

그녀가 깨끗이 헹구면 력이 옆에서 그릇들을 받아 톡톡 털어, 엇갈리게 포개어 말렸다.

물 빠짐을 생각한 배치— 작지만 세심한 배려.


딱 10분.

일사불란한 그들의 손끝엔 사이좋은 남매의 잘 맞는 호흡이 있었다.

둘이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섰을 때, 테이블 위에 무언가 놓여 있었다.

아까 다 비운 줄 알았던 발렌타인 30년산 약간과 조각 치즈 몇 점.

그리고 작은 그릇엔, 얼음 몇 개가 살포시 담겨 있었다.


윤이 먼저 눈치챘다.

“민주 언니네.”

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야? 진짜… 맨날 이러셔.”

윤이 막 씻은 컵 두 개를 키친타월로 닦아 가져왔다.

발렌타인을 나눠 따르니, 딱 반 컵씩.

윤이 잔을 들며 웃었다.

“마지막은 늘 우리 몫이네.”

력이 잔을 들며 말했다.

“그러게… 노땅들이 은근 귀엽다니까.”

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지만, 그 울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잔을 비운 둘은 잠시, 아주 짧은 고요 속에 머물렀다.

컵 안에서 흔들리던 얼음도 어느새 다 녹고 물방울 몇 개만 남았다.

컵에 맺힌 물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엔, 물방울이 출렁이고 있었다.

“오빠…”

“응?”

“아빠, 의식 돌아올까?”

“모르지. 그래도 곧.”

“엄마는… 괜찮을까?”

“….”

윤은 손에 든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오빠. 나, 엄마 보고 싶어.”

“….”

“집에 계신 엄마 말고…우릴 낳아주신 엄마.”

그녀의 눈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잔을 모아 씽크대에 넣었다.

그리고― 둘의 그 장면은 민주의 방 모니터와 양헌의 사무실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민주는 눈물을 닦는 윤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력이 화면에 비치는 순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빡빡이, 저 냉정한 놈…”

아래층의 양헌도 똑같이 내뱉었다.

“빡빡이 저 새끼, 사람 맞나 몰라.”

윤은 민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력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접어 구석에 갖다 놨다.

그리고 조용히 소파에 누워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눈도 천천히 젖어들었다.

그렇게 레인보우 헌터스의 첫 회식이 끝났다.

이전 10화070. 안녕!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