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악마는 살아 있다

<2025년 4월 4일・서울 중구 필동>

by 부지깽이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전화를 받던 장춘동의 입가엔 득의의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그래... 그럼 그럼~ 진작에 처리했어야 했는데··· 암~ 그래야지. 빠큐 그 개자식, 너무 오래 갖고 놀았어. 흐흐”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오래된 한옥 한 채.

지붕에 얹힌 기와는 여기저기 깨지고 빛이 바랬고, 나무로 만든 문짝은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허옇게 일어난 채 세로로 길게 금이 가 있었다.

그러나 내부는 겉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옥 주변에는 도‧감청 방지장치가 쫙 깔려 있고, 처마 속에는 드론 탐지 및 격추 장비까지 숨겨져 있었다.


한옥은 낡은 빌라와 5층짜리 사무실 건물들에 둘러싸여 외부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완벽한 요새.

건물 외벽에 내걸린 간판들도 로터리 당구장, 평강 한의원, 국제기원 등 어느 도시,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름들뿐이다.


하지만 이 허름한 간판들 뒤엔 뜻밖의 인물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특전사, UDT, 707 특임대나 HID 출신들로 위장술에 능한 일당 백의 베테랑들이었다.

당구장 주인, 한의원 물리치료사, 기원의 단골손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척하면서도 오감과 신경을 오롯이 한옥에 집중시키는 충직한 파수꾼들.


그리고··· 이 한옥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었다.

여긴―정치의 뒷면, 권력의 속살, 오직 ‘극소수의 실세’들만 드나들던 곳.

겉으로 드러난 안가들보다 더 은밀한 곳.

방 하나 건너면 권모, 담장 너머로 술수, 나무기둥엔 은밀한 속삭임이 묻어 있었다. 바람결에 흘러나오는 기척조차 정보였던 곳이었다.

겉은 낡은 한옥이지만, 안은 총칼보다 무서운 권력이 숨 쉬던 밀실이었다. 지금 장춘동이 앉아 있는 이 한옥이—바로 그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장춘동은 그 자리에 앉아 오래 전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 * *


각하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 각하가 쓰던 모든 안가는 후임 경호실장에게 목록째 넘겨졌다. 하지만 이곳만은 끝내 들키지 않았다. 그가 직접 손을 써, 그 누구의 기록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 지하실엔, 각하 재임 시절 쓰이던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원짜리 지폐 다발로 두세 트럭은 족히 될 양.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오직 나와 각하뿐이다.

각하가 죽었으니 이젠 모두 내 차지다.


기동 형님이 살아있는 권력을 휘두르던 그 시절, 나는 음지에서 열심히 일했다. 각하의 명을 받아 비자금을 챙기고, 말 안 듣는 정치인이나 학생들을 데려다 조용히 만들었다. 각하가 권좌에서 내려온 뒤엔 각하를 배신한 놈들, 각하를 해치려는 놈들을 감시하고 정리해 왔다.

기동 형님은 각하께서 오랜 친구에게 권좌를 넘기겠다고 하자 평소답지 않게 강하게 반대했다.

형님이 본 그 ‘후임 대통령 후보’란 작자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겁쟁이였다.

형님이 막후에서 실세로 군림하던 때.

여당 대표였던 그 작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찾아와 “기동이. 나 좀 한 번만 도와줘~”라고 부탁할 때도 형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안 됩니다. 이게 몇 번쨉니까? 여당 일은 제발 알아서 좀 해결하세요.”

형님의 대답은 늘 냉정하고, 무정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 ‘보통 사람’에 대해, 형님은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독한 사람은 아니지만··· 언젠가 각하의 등에 칼을 꽂을 겁니다.”

하지만 형님의 충언은 끝내 각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리고 그 ‘물에 물탄 사람’은—야권 단일화가 틀어진 덕에 역대 대선 최저 득표율을 얻고도 대통령이 됐다.

그 날 밤, 형님은 술잔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젠장~ 36%가 뭐냐? 아이구! 창피해. 우리가 그렇게 뒷공작을 해 줬는데··· 저것도 대통령이라고~”


그리고 그 ‘저것’은 형님의 예언처럼, 자신을 권좌에 앉혀 준 친구와 그 부인을 엄동설한에 강원도 산골,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절로 쫓아내 버렸다.

사람은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한다지만, 그 줄을 누구 손에 넘길지도 잘 따져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동아줄을 넘겨줬는데 주변에서 ‘줄에 먼지 좀 묻었다’고 수군거리자, 저 망할 ‘저것’은 먼지를 털어주지는 못할망정 그 줄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그 유약하고 가엾은 자는, 결국 말년에 이르러 우리가 각하와 함께 일궈낸 자랑스러운 자유 대한민국의 업적마저 스스로 부정하고 말았다.


더 가관인 건, 자식 놈을 앞세워 국민들 앞에 몇 번이나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각하보다 일주일 먼저 눈을 감았지.


이런 저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취해 있던 찰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아휴! 또 잔소리깨나 듣겠네.”

장춘동은 상체를 소파 깊숙이 더 파묻은 채 느릿느릿 팔만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처럼 소파를 앞뒤로 쓱쓱 움직여 일부러 삐걱~ 소리를 냈다.

“백마! 형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목소리는 우렁찼고, 말끝엔 또랑또랑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의 입가엔, ‘경례를 올리는 척’하는 노련한 웃음이 살짝 번졌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장춘동은 벌써 다음 ‘청소 대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keyword
이전 23화008. 아! 뚜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