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백마부대
장춘동!
크지 않은 키, 깡마르고 단단하게 죄인 근육.
줄에 묶인 맹수처럼 도사리는 기운.
그의 양손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붉지도, 검지도 않은 탁한 핏빛이 살결에 스며들어 하나가 된 듯했다.
그의 왼쪽 귀 윗부분은 허전했다.
린을 사랑했던 베트콩 저격수의 총탄에 뜯긴 흔적이다.
장춘동은 흉터를 가리려 군모를 삐딱하게 눌러 썼지만, 그 삐딱한 각도마저 그의 건들거리는 오만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
죽음에 취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름처럼 탁하고 끈적한 광기.
장춘동은 느긋하게 다가오더니 규의 왼편에 앉아 있던 뚱뚱한 상병에게 씨레이션 통을 내던졌다.
퍽!
뚱땡이의 허벅지를 맞고 통이 땅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뚜껑이 열리며―피와 살점이 뒤엉킨 귀때기들이 질퍽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으악!”
뚱땡이가 비명을 질렀고, 규는 가슴팍이 아프도록 토악질을 했다.
“우웩~ 웩~ 캭!”
다른 분대원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대수롭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죽음 따위는 일상의 일부인 양….
“아이구~ 장 하사님. 또 그러시네~”
뚱땡이가 겁에 질린 척 굽실거린다.
장춘동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와 토악질하는 규의 머리를 사정없이 갈겼다.
“병장이란 놈의 새끼가~!”
그리고는 뚱땡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으름장을 놨다.
“야! 고물~ 내 실적 잘 적어 보고해. 내가 저금한 거 한 개라도 틀리면, 니 귀때기 두 개로 메꿀 줄 알아!”
장춘동은 아직도 웩웩~거리는 규의 머리를 한 대 더 후려갈기며—
“빠큐! 이 겁쟁이 새끼!”
욕을 내뱉고는, 칼빈을 어깨에 메고 중대장 막사로 사라졌다.
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집어삼키며 장춘동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텁텁한 먼지, 비릿한 핏물 냄새, 끈적한 땀방울 속에서 규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캭! 퉤~ 저 새끼는 사람도 아냐. 저 귀때기들이 베트콩 거면 내가 베트콩 자식놈이다. 저 새끼를 확 쏴 죽일까?”
규의 옆에 앉아 있던 김창열 병장이 가래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이구! 김 병장님. 참으십쇼! 양헌이를 생각하셔야죠~”
씨레이션통에 허벅지를 맞은 상병이 땅바닥에 떨어진 귀를 담아 뚜껑을 눌러 닫으면서 김 병장을 향해 능청을 떨었다.
김 병장이 도끼눈을 치켜뜨고는 칼빈을 번쩍 들더니, 총구를 겨눴다.
“썅놈의 새끼! 날 또 놀려? 배때기에 구멍을 내 주랴?”
살벌한 위협에도, 상병은 씨레이션 통을 들고 씨익 웃었다.
53년 전 전쟁터의 냄새와 소리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던 규는 눈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그러고 보니―김 병장은 일병 때 휴가 나가서 아기부터 만들고 왔다며 으스댔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편지를 받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아기의 이름은 김양헌.
그리고 뚱뚱한 상병도 금세 기억이 났다.
이름은 함돈혁. 이 지옥 같은 전쟁터를 함께 버텨낸 전우이자 평생의 벗들이었다.
53년 전 셋은 피묻은 총을 움켜쥐고, 함께 전장을 넘나들었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들판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었다.
“죽지 마!”
“살아서··· 꼭 집에 가자!”
지옥 같은 전투가 끝날 때마다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불렀던 전우들. 그 녀석들을 오늘 이 낯선 시간, 낯익은 공간 속에서 다시 만났다.
규가 이 곳에 떨어지기 전에도―
둘은 어느 날 불쑥 고기 한 덩이, 소주 한 짝 들고 찾아와 밤새 떠들다 가곤 했고, 어떤 날은 꼭 할 말이 있다며 거창한 계획을 쏟아내다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기도 했고, 돌아갈 땐 서로의 호주머니를 털어 꾸깃꾸깃한 천원짜리를 아이들 손에 꼭 쥐어줬다.
그런 놈들이, 지금 규의 눈 앞에서 또 싸우고 있었다.
머리도 아프고, 구역질하느라 가슴도 아픈 규는 결국 폭발했다.
“싸움은 집에 가서 해. 제발!”
규의 고함에 둘 다 벙찐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뚱땡이, 아니 함 상병이 낄낄거리며 맞받아쳤다.
“아이구, 박 병장님~ 이게 싸움입니까? 계급장 떼고 웃통 까고 맞짱 뜨던가, 홀라당 벗고 으쌰으쌰 해야 싸움이죠! 김 병장님은 웃통 까고 맞짱 전문, 박 병장님은 홀라당 벗고 으쌰으쌰 전문~~!”
‘아이구 저 망할 놈의 음란돼지!’
규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김 병장이 쯧쯧 혀를 차며 쏘아붙였다.
“너는 삼신할미가 아니라 음란마귀할멈이 점지해 준 게 틀림없어. 죽어서도 주둥이만 둥둥 떠서 음담패설을 나불댈 거야~”
쉴 새 없이 투닥대는 둘은 53년을 한결같은 만담콤비였다. 젊은 날의 전우들을 다시 만난 규는 그들이 더없이 반갑고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