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무지개 아래 … 다시 만난 악마

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백마부대

by 부지깽이

으으읔….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간신히 힘을 짜내어 밀어 올렸다.


여기가… 어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탕! 타탕! 피융— 쾅!

타타타타타! 슈웅— 쾅, 쾅!!


귀를 찢는 총성과 포성, 땅을 울리는 진동….

비릿한 피 냄새와 매캐한 화약 연기가 혼합된 공기.

비에 젖은 들판, 하늘을 가르는 헬기편대, 박격포가 정글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꿈...?

그러기엔 감각이 너무나 생생했다.


“박 병장! 정신 차려~ 박규! 이 빠큐 새꺄!!”


그럼 여기가… 베트남인가?


매캐한 화약냄새가 코를 후벼파고 눈도 쓰라렸다.

“빠큐~ 엎드리라고!”

쇠를 갈아먹은 듯한 걸걸한 목소리, 귓속을 긁어대는 욕설과 함께 옆에서 날아온 매서운 발길질이 허벅지를 강타했고, 규는 사정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헉!”

진흙에 파묻힌 얼굴을 들어 옆을 보니 야차같이 생긴 녀석이 성난 얼굴로 쏘아본다.

“병신 새꺄! 총 맞아 뒤지고 싶냐?!”

넋 잃고 서 있다가 “박규!”란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탕! 타당! 탕탕!

타타타타— 슝! 쾅! 쾅! 쾅!


곳곳이 움푹 패인 젖은 들판과 여기저기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로 보이는 저 멀리 우거진 정글은 ‘녹색 멀미’를 일으켰고, 정글 위에 걸린 선명한 무지개는… 정말이지 너무 생뚱맞게 아름다웠다.


‘이런 젠장… 또 저놈의 잡것이 장난질을 치나?’

가슴 깊은 곳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아군은 명령에 따라 뒷걸음질쳤다.

일단 살아야 한다. 규는 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뒷걸음치는 부대에 합류했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가 시큰거렸다.


규는 아까 발길질을 날린 놈을 힐끔 봤다.

떡 벌어진 어깨, 솥뚜껑 같은 주먹, 검게 그을린 얼굴, 뭉툭한 코. 가슴에는 뚜렷한 이름— 김창열.

53년 전, 함께 전장을 누비며 같이 죽을 고비를 넘긴 동기 녀석. 며칠 전에도 규를 찾아와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평생지기다.


규와 김 병장은 한참을 후퇴해 언덕 위로 올라왔다.

같은 분대원들인 듯한 병사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다가 둘에게 철모를 까딱이며 가볍게 인사했다.


잠시 후— 그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백마!”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

시선이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쏠렸다.

철모를 삐딱하게 눌러쓴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가슴팍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규는 숨이 턱 막혔다.


‘장‧춘‧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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