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 광주광역시 북구
다음 날 아침. 오전에 전국적으로 봄비가 온다더니, 아침부터 하늘이 축축했다.
력은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랜 뒤, 규를 태우고 광주로 향했다. 고속도로 내내 퍼붓던 빗줄기는 광주 나들목을 나오자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력은 국도로 접어들며 조수석 창 밖을 내다봤다.
서쪽 산허리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누가 일부러 거기다 걸어둔 것처럼.
지역 주파수에 맞춰 둔 라디오에선 아니나다를까 ‘오버 더 레인보우’가 흘렀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속 쥬디 갈란드가 부른 오리지널 버전이다.
조수석에 앉은 규는 오늘따라 조용했다.
력이 옆눈으로 힐끔 보니, 눈은 말똥말똥~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빠! 무지개 떴어요.”
“어디?”
“오른쪽에요.”
규는 창밖을 보고 푸념했다.
“에이, 재수 없는 무지개.”
그 순간―
쿠르르르――
지축을 울리는 굉음에, 력은 본능적으로 백미러를 힐끔 봤다. 거기엔 덤프트럭 한 대가, 짐승처럼 맹렬히 돌진해오고 있었다. 뒤꽁무니를 덮칠 듯, 금세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아빠! 손잡이 꽉 잡으세요!!”
비명에 가까운 외침.
규도 백미러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덤프트럭은 어느새, 싼타페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력은 지체 없이 액셀을 꾹 밟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규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자기 쪽으로, 확 꺾었다.
그러나— 쾅!!!
덤프트럭이 조수석 뒷부분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후미가 종잇장처럼 구겨진 싼타페는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 뒤를 속도를 줄이지 않은 덤프가 또 들이받았다.
싼타페는 갈기갈기 찢기듯 뭉개졌고,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두 차는 길가 담벼락까지 질질 끌려가다 간신히 멈췄고, 력은 충격으로 머리를 떨군 채 미동도 없었다.
규는 피투성이가 된 채 아들의 몸을 흔들었다.
“력아... 력아...”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규는 피로 물든 입가를 떨며 마지막 힘을 끌어올렸다.
말라붙어 가는 숨결 사이로, 아들을 향한 마지막 말을 쏟아냈다.
“살아라… 살아남아 부디… 네 인생을 살아라… 복수는…… 시간낭비일 뿐이야…”
밖에서는— 덤프트럭에서 내린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붉게 얼룩진 작업복, 투박한 안전화, 고개는 숙였지만, 그 어깨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눈빛. 그 눈이 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확인하듯….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혹시라도 살아 있는지….
그렇게 규를 내려다보던 그는, 더는 확인할 필요 없다는 듯 눈길을 거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핏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습한 아스팔트를 조용히 스치는 그의 발소리는 비에 젖은 도시의 그림자처럼 사라져갔다.
규의 시야가 흐려졌다. 눈꺼풀은 납처럼 무겁고, 세상의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이 지옥 같은 풍경을 구경하는 잔인한 신을 올려다 봤다.
서쪽 하늘에 비와 피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일곱 개의 빛줄기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무지개.
하지만 그건 규에게 희망의 징표가 아니었다.
규에게 무지개는, 늘 죽음의 전령이었다. 그 화려한 일곱 빛깔은, 한 번도 규를 축복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규가 사랑하는 이들을 삼키고, 규의 인생을 짓밟은 저주였다.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순간, 규의 정신이 회광반조처럼 또렷해졌다.
그리고 무지개를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억울해 !!!”
깨진 성대에서, 부서진 심장에서 피와 함께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비명도, 유언도 아닌— 그저, 남은 숨을 긁어 토해낸 한 마디.
“… 무지개, 너를 … 저주해!”
그 한마디에― 흐르던 피가 멈추고 공기가 울렸다. 하늘이, 아주 잠시, 숨을 멈춘 듯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무지개가 마치 살아 움직이듯, 그의 시야로 스며들었다. 점점 뚜렷해지는 일곱 개의 빛. 빛이 아니라,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가늠할 수 없는 저편에서…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주? …그게 끝일까?”
귓가에 맴도는 그 속삭임이 심장을 파고들었고, 규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