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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11. 2022

한번 충전하면 부산 정도는 가야지?

한국에 전기차가 처음 나왔던 시기에 겨울에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SM3 EV를 렌터카로 빌린 적이 있다. 회사에서 이벤트로 충전소가 설치되어 있는 펜션과 연계해서 싸게 빌려주는 이벤트였다. 그때만 해도 한번 충전하면 갈 수 있는 거리가 150km 내외로 많이 짧았던 시절이긴 했지만 제주도는 섬이니까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두 번째 날이었나. 하루를 잘 놀고 남은 주행 거리 60km를 확인하고 30Km 남짓 떨어진 숙소로 출발하는데 눈이 좀 날리기 시작했다. 시야도 확보해야 하고 날도 좀 추워서 히터를 틀고 성애 제거를 작동시켰더니 갑자기 남아 있는 주행 거리가 60km에서 25km로 확 줄어들었다. 혹시나 숙소까지 못 가고 중간에 멈출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히터도 못 틀고 주행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EV 트렌드 조사 결과. 최대 주행 거리는 전기차 선택의 중요한 요소다.



충전이 오래 걸리는 만큼 한번 충전하면 멀리 가야 한다.


전기차를 사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보면 1등이 충전이 불편해서라고 답해서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주유소에 들러서 5분이면 채우는 내연기관 차량들에 비해서 급속도 30분이 걸리고 충전소도 찾기 어려운 전기차는 충전이 가장 불편한 요소이다. 그런데 주행 거리까지 짧으면 그 힘든 충전을 더 자주 해야 하는 불편함이 더해진다.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150km 면 서울에서 부산 내려가는 사이에 휴게소에 들러서 30분씩 충전을 두 번은 하고 가야 한다니.. 이래서는 경쟁력이 없다. 


배터리를 무작정 늘리기도 어려운 것이 일단 배터리는 무겁고 비싸다. 그리고 안전을 위한 장치도 필요하기 때문에 부피를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의 프레임을 고려하면 배터리는 보통 연료탱크 위치에 설치하게 되는데 이 공간도 그리 크지는 않다. 그리고 차량 뒷바퀴가 더 무거워지면 회전 시 쏠림이 커지면서 운전 성도 나빠지기 때문에 2020년 이전의 차량들은 대부분 300km 미만의 주행거리 성능을 보였다.


2020년 전기차의 주행 마일리지 - 300km 이하 모델들은 지금은 거의 사양화되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테슬라를 따라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각 회사들의 주행거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차량 바닥에 배터리를 얇고 넓게 배치해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에너지 밀도가 크게 개선된 배터리를 더 싸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기본 400km 최대 1000km까지 다양한 주행거리 성능을 보이는 전기차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제는 한번 충전하면 부산 정도는 한 번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 참조


추운 겨울에도 효율을 유지할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추운 겨울에 주행 거리가 줄어드는 문제에 대한 개선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처럼 배터리를 사용하는 모든 전자 제품들은 추위에 취약한데 추운 겨울엔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가 줄어들어서 에너지 효율성이 낮아지면서 차가운 주행 초반엔 에너지 소모량이 더 늘어나고 충전시간도 더 길어지게 된다. 


겨울철에 반드시 필요한 히터도 겨울철 전기차 주행 거리를 잡아먹는 큰 요인이다. 내연기관 차량은 감소 엔진의 열기로 뜨거워진 냉각수를 히터 코어에 순환시켜 공기를 데우기 때문에 히터로 인한 에너지 소비는 팬을 돌리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전기차는 엔진이 없으므로 배터리의 전력을 뽑아서 그야말로 전기난로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현대차 블로그 참조


이런 겨울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차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대한 활용해서 배터리를 따뜻하게 유지해 주고 필요한 실내 난방에도 사용하는 배터리 히팅 펌프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이를 적용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의 경우에는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혹한기 주행 거리 변동 비교 실험에서 다른 메이커들의 결과를 압도하는 성능(10% 감소 vs 20~30% 감소)을 보였다. 2021년 말에 출시된 테슬라 모델 Y와 모델 3 뉴 모델에도 이런 시스템이 들어갔다. 

노르웨이에서 진행했던 혹한기 주행 거리 결과입니다. 신고치 와 차이가 제일 적은 차가 코나였습니다.


배터리는 더 작아지고 더 꽉 채워지고 있다. 


더 궁극적으로는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기적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가 개발 중에 있다. 대부분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접촉을 방지하는 분리막이 위치하고 액체 전해질이 양극, 음극, 분리막과 함께 있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이 포함되면서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의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다.


삼성 SDI 홈페이지 참조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면 온도 변화로 인한 배터리의 팽창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누액 등 배터리 손상 시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안정 장치들이 필요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이며, 전해질이 훼손되더라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된 부품들을 줄이고 그 자리에 배터리의 용량으로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추위에서도 변함없는 성능을 내며 충전도 훨씬 빠르다.


여러 배터리 회사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의 무한한 가능성에 올인하고 있다. 아직은 고체 상태에서의 효율을 개선하고 단가를 낮추야 하는 등 상용화를 위해 넘어가야 할 산들이 많이 있지만 빠르면 5년 이내에 늦어도 2030년에는 시장 전체를 바꾸는 Game Changer가 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추운 겨울에도 아무 걱정 없이 히터 빵빵하게 틀면서 달릴 날이 올 거다. 


제 5 장 이제는 대세다 전기차 이야기 

           5-1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의 혼종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5-2  전기로 가는 모터가 자동차 엔진보다 더 효율적인가?

           5-3  모든 차량이 전기차로 가는 것이 가능한가? 정말 전기차가 친환경적인가?

           5-4  테슬라 이야기 1 - 테슬라의 창립과 로드스터의 출시까지

           5-5  테슬라 이야기 2 - 죽음의 계곡을 넘어 모델 S 개발까지

           5-6  테슬라 이야기 3 - 테슬라 - 자동차를 새롭게 정의하다.  

           5-7  한번 충전하면 부산까지는 가야지?

           더 생각해 보기 - 수소 연료 전지 차량이 왜 이렇게 주목받는가?

이전 14화 테슬라 - 자동차를 새롭게 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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