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영업 사원
얼마 전에 영업팀 회식을 했다. 그 회식에서 우리 부장님(부장님이라고는 하지만 나랑 4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 형 동생하며 지내고 있다)이 하신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자신은 영업 사원으로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는 게 장기인데, 아직 우리 회사에 적응을 못 해서 행정 업무만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자신이 마치 행정병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쳤기 때문에, 그가 행정병이라는 말로 전하려고 했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만 계속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하다는 뜻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는 영업 사원이 되기 전에는 영업 사원이 새롭고 색다른 일을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업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생각보다 단순하고 의례적인 행정 업무가 많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고객에게 우리 회사와 제품을 소개하는 자료를 보내고, 그다음에 고객과 얘기가 잘 되면 견적서를 보내고, 고객이 그 견적서를 토대로 예산 사용 승인을 받으면 계약서 초안을 보낸다. 그런 다음에는 고객사와 우리 회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서 서로 맞바꾸는 순서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우리 회사에서 고객사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고객사에서는 그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우리 회사에 돈을 보낸다.
이것이 영업 사원이 실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단순한 서류 업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회사의 실적에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나는 초보 영업 사원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당연히 실수도 여러 번 저질렀고, 그 때문에 혼도 났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익숙해지고 나면 기계처럼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 회사와 제품의 소개 자료를 보낼 기회를 누가 공짜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내 연락을 받아주거나 만나주는 고객조차도 별로 없다.
영업 사원은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일거리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야구로 치면, 타자가 안타를 치든 볼넷이라도 얻든 몸에 공을 맞든 하다 못해 삼진을 당해서 벤치로 돌아오든 하려면, 타자는 일단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타자는 모든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영업 사원도 실적을 내든 아무 소득 없이 거래를 마무리하든 하려면 영업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과 영업 사원이 영업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아마 부장님이 회식에서 얘기했던 것도 자신의 타석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뜻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타자와 영업 사원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야구팀에서는 실력 좋은 타자에게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충분히 만들어준다. 영업 사원은 반대로 영업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실력 좋다고 인정받는다. 그래서 영업 사원의 업무 평가 기준에는 영업 기회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 하는 것도 들어가는 것 같다. 또 다른 차이점도 있다. 타자는 타율을 3할 정도 기록하면 공을 잘 친다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영업 사원이 영업 기회를 10개 만들었을 때 그중에 실제로 계약까지 이어지는 것은 한 두 개 될까 말까일 것 같다. 대신 그 한 두 개의 계약으로 만들어낸 실적이 얼마냐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평가받게 된다.
아마 실력 좋은 영업 사원은 자신이 만들어낸 영업 기회를 계약으로 만들어내는 비율이 남들보다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실력이랄 게 없는 수준이다 보니 내가 들어설 타석을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내가 계약까지 이끌어내는 비율도 1할이 채 넘지 못 할 것 같다. 어차피 내 타율이 그 정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타석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할 타자여도 타석에 천 번 들어서면 안타를 백 개 치는 것이고, 만 번 들어서면 안타를 천 개 치는 것이다. 대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구름이 될 만한 작은 물방울조차도 소중히 챙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