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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Dec 31. 2023

이제는 '잘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하나의 오답노트

12월 초에 초겨울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오랜만에 뭘 해도 피곤하고 지치는 나날을 며칠 정도 보냈다.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져내린 모양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비슷한데, 몸이 버텨줄 때는 아무리 바빠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새로운 이벤트들이 생기는 게 즐겁기까지 했다. 하지만 몸이 축축 처지니 만사 귀찮고 짜증도 쉽게 났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하러 일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잘 정리해봐야겠다 싶었다. 


요즘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일 년에 한 번씩은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린 왕자> 6장에는 어린 왕자가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어린 왕자가 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민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해가 지는 게 마치 모든 게 끝나고 마무리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학생들과 이 부분을 수업할 때는 '만약 자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 같으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이 물음에 뭐라고 대답하느냐를 보면 그 학생이 자기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다.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어렵다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별 차이가 없는 셈이 된다. 당장 내일 죽는데도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하루를 더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항상 학생들에게 하던 질문을 이번에는 나에게 던져보았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려고 할까.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매일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다 누군가가 시켜서, 실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하는 척 했을 뿐, 그 모든 일들이 정작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슬펐다. 내가 열심히 산다고 믿었던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나 스스로는 그 동안 많이 바뀌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는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성장했다고 느낀다는 게 조금 모순적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의미하다고 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조금 비겁하지만, 하루가 아니라 한 달, 아니 더 길게 늘려서 지난 한 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2023년은 나에게 '파는 사람'이 되어 가는 한 해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까지의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작은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기는 했지만,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보다 내가 더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업 사원'으로서 고객을 만나 제품을 파는 일을 한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다. 파는 일을 잘 하려니 '파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옷에 나를 맞추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파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어떤 일에든 무작정 부딪혀보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파는 사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파는 사람'을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내 자리를 찾기 힘들다. '잘 파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여기저기서 인정받고, 더 큰 영업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2024년에는 한층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싶다. 


여기에 남기는 글들은 사실 '가르치는 사람'에서 '파는 사람'이 되어가는 와중에 좌충우돌하면서 했던 실수들을 오답 노트처럼 정리해놓은 것이다. 오답 노트를 꼼꼼히 정리해놓고 여러 번 복습해야 한 번 틀렸던 문제를 틀리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도 모르는 문제가 나와서 틀렸을 때는 어쩔 수 없다며 툴툴 털어냈지만, 아는 문제를 틀렸을 때는 스트레스를 매우 많이 받았다. 일하면서도 그 부분은 비슷한 것 같다. 이전에 했던 실수를 또 했을 때 화가 많이 난다. '잘 파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렇게 꾸역꾸역 적어내려가는 오답 노트가 거기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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