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 Nov 17. 2019

시간 귀한 줄 아는 사람

회사원은 시간이 없고, 퇴사자는 돈이 없다.

    회사에 다닐 땐 퇴사 후 이직 준비를 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일하며 모아둔 돈도 있겠다, 시간도 있겠다, 못할 게 없어 보였다. 부러운 마음을 전하자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회사를 그만둔 건 전혀 후회하지 않지만, 요즘 워낙 취업이 어렵다 보니까 자꾸 불안해져.” “그래도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유니까,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여유롭게 생각해보면 어때?” 우리 모두 힘들게 회사에 다니던 때에, 퇴사하면 꼭 여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새로운 것도 배우자고 함께 다짐했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분명 다시 취업하고 나면 이 시기를 후회할 것 같은데, 그래도 잘 안되네.” 하긴. 나도 취업하기 전에 무리해서라도 길게 여행을 다녀오라던 학교 선배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만한 돈을 들이기도 아까웠다. 취업하고 나서야 회사원은 시간이 없고, 학생은 돈이 없다는 선배의 푸념이 꽤나 진지했다는 걸 알게 됐다. 삼사일 말고, 일이 주 동안 길게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회사에 다니는 한 절대 멀리는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 컸다.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친구는 꽤 괜찮은 곳에 취업했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우리의 생각은 몇 개월 전의 대화가 무색할 만큼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같이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너무 아쉬워." "친구가 유럽여행을 가자는데 예산이 인당 삼백만 원이야. 멀리 나가는 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고민돼." 정반대의 마음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이라고 믿는 감각도 참 상황에 따라 쉽게 왔다 갔다 한다. 친구 말이 딱 맞다. 저쪽 편에도 있어봐서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마음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인다. 아, 정말 일할 땐 쉬고 싶고, 쉴 땐 일하고 싶은 게 인간이란 말인가. 시간이 많을 땐 돈이 귀하고, 돈이 많을 땐 시간이 귀하고. 적당히 벌면서 적당히 여유로운 시기를, 한 번쯤은 살아볼 수 있으려나.     


    그래도 회사에 다니며 했던 굳은 다짐이 있어서 너무 초조해지지 않으려 한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라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그러고 싶다. 훗날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치여 지금을 회상할 때, 이 여유로운 시기를 그냥 흘려보냈다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넘쳐나도 시간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단 말처럼 휴식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 쉴 때 잘 쉬고, 여유로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