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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Aug 15. 2020

용감한 겁쟁이

소심해도, 걱정이 많아도, 두려워도.

"언니는 항상 걱정이 많은데, 또 항상 뭔가 새로 시작하고 있어서 신기해요. 약간 용감한 겁쟁이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회사 후배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또 무언가 새로 시작했다고, 그런데 걱정이라고, 이것도 걱정이고 저것도 걱정인데, 그래도 열심히 한번 해봐야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용감한 겁쟁이... 그러고 보니 딱 나잖아? 그런 표현을 찾지 못했을 뿐, 뭔가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다투고 있다는 걸 나도 느끼고 있었다.


난 태생이 정말 소심했다. '내향적이다'와 '소심하다'를 구분해서 쓰는 편인데, 어릴 적 나는 소심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였나? 같은 반 친구가 내 자리로 다가와 이름을 물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입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잘 꺼내보이지 않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부 세계를 가져다 내면을 짓고, 외향적인 사람은 내면을 꺼내서 외부 세계를 짓는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인 게 좋다. 풍요롭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를 꺼내야 바깥 세상과 부딪히고 성장하며 세상 속 나의 위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의 성분은 다양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인간은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맹수를 피하고 자연에서 생존하려면 위험에 민감해야 하니 당연하다. 우리는 더 이상 야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지만, 매일 내일의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의 파도를 타고 있다. 자주, 세상이 바다 같다고 느낀다. 나는 바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잔잔하고 고요한 수평선, 햇살이 비치는 표면, 아이들도 물장구를 치는 옥빛 해변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상상력이 닿지 않는 먼바다와 깊은 바다, 해안을 집어삼키는 큰 파도, 가라앉아있던 온갖 것들을 해안으로 뱉어내 버리는 비가 쏟아지는 날의 바다 역시 바다의 일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듯,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에도 태초의 자연과 같은 불확실성의 에너지가 출렁거린다. 원하는 곳에 도달하라고 손짓하는 파도 아래, 위험과 늪, 고양과 평화가 한데 섞여 일렁인다.


그래도 단 한 번 주어지는 삶이니 최선을 다한다. 용감해지려 하고, 나아지려 하고, 나아가려 한다. 어쨌든 무언가 하는 걸 택한다. 잘 해낼 거면 하루라도 일찍 해내서 더 오래 행복해야지. 실수할 거면 하루라도 일찍 실수해서 성장해야지. 그래야 다음엔 잘 해낼 수 있으니까. 걱정되고 두렵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다. 용감한 겁쟁이, 친구가 장난 삼아 건넨 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래, 대단한 위인으로 살진 못하더라도, 용감한 겁쟁이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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