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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Nov 17. 2019

회사에 진심씩이나

관심 없는 사람끼리 하는 대화

    회사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즈음 한 선배가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왔다. 회사가 지방 소도시에 있어 직원 대부분이 타지 생활 중이기에 꽤 흔한 질문이었다. 먼 곳에 취업해서 힘들겠다, 부모님은 어디 사시냐, 학교는 어디서 나왔냐 등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더 나눴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그 선배가 회식 자리에서 다시 내게 물었다. "넌 고향이 어디야?"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대답했고, 이번에도 부모님이 어디 사시는지,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번이면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기억했겠지만 그 뒤로도 이런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 다들 비슷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지 않고, 반복해서 질문했다. 똑같은 질문을 여섯 번까지 물어본 선배도 있었고, 일 년이 넘게 족히 열 번은 말한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사도 있었다. 매주 월요일엔 주말에 뭘 했는지 묻곤 했는데, 나름 성심껏 대답했지만 누구도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의미 없이 쏟아지는 질문 중에는 당황스러울 만큼 사적인 내용도 섞여 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도 아닌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그때의 나는 곤란해하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 답변하곤 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원들에겐 특유의 화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호감으로 맺어진 보통의 관계가 아니다 보니 당연히 서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은 없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니 대화라는 '행위'가 필요하다.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중량감을 유지해야 한다. 상대에게 부담감을 얹어주지 않는 무색무취의 대화면 족하다. 당연히 소통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점점 회사에 마음씩이나, 진심씩이나 들고 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과장님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다 기억하는 사람이 더 부담스러운 거야. 듣고 흘려주는 게 매너야." 적당한 무관심,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회사원의 예의인 걸까. 하긴 그 말도 이해가 간다. 처음엔 부담스러운 관심과 당황스러운 무관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화법이 낯설었다. 하지만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고 나니 부담도 사라졌다. 나도 알맹이 없는 대답을 하면 그뿐이니까. 진심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모범답안 몇 개를 마련해 놓고 나니, 이 화법이 참 편리하게 느껴졌다.


    준고참 소리를 들을 만큼 연차가 쌓였던 어느 해 어느 날,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 과장님 고향이 서울이셨어요?" "아는 뭘 아야. 저번에 말했잖아." 과장님은 웃으며 핀잔을 주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 내가 이미 물었고, 과장님이 대답했고, 내가 '서울 토박이는 별로 못 봤는데 토박이시네요!'라고 까지 말했었다. 진심과 관심은 한편에 접어두고 기계적인 대화로 시간을 때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반면 그 과장님은 내가 했던 말을 대체로 다 기억하고 계셨다. 회사생활은 무뎌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무뎌지면 무뎌질수록 편해진다 생각하며 애써 바뀌려고만 했었는데. 훨씬 회사를 오래 다닌 과장님보다 내가 더 얄팍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부끄러웠다.


   사실 지금도 회사생활에 진심이 담긴 대화가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화하는 법을 잊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삭막한 회사 안에서 인간적인 순간을 만들어 준 들에게 여전히 감사하다. 바뀌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화법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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