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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CH III 공동주택의 ‘삼권분립’을 해치는 7가지 '아파트' 문화

by 관계학 서설 II Jan 05. 2025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라 한다)는 입주민 중에서 선출된 동대표로 구성된다. 임기는 2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동대표 중에서 회장, 감사, 이사 등 임원을 직,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공동체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안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회의이자 상설 대표기구이다. 회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간 예산, 시설 유지 관리, 보안 및 커뮤니티 규칙 제정 등과 같은 이슈들을 다룬다. 동대표는 관리주체와 입주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여 투명한 의사소통과 공정한 의사결정을 보장하고 책임진다. 목표는 모든 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동시에 협력을 촉진하고 갈등과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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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며 가치 기준의 핵심은 '공동'이란 단어인지도 모른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하고 결정 역시 이 방향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 단지만의  독특한 공통 문화라 할 수 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공동'이란 수식어는 공동책임, 공동분담, 공동비용, 공동시설, 공용설비, 공용공간 그리고 공용서비스 등과 같이 공동체 생활의 90% 이상의 각종 변수와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다. 입주민의 독립된 세대별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 다 '공동, 공용'이란 표현이 항상 따라붙는다. 공동이란 단어는 한편으로는 책임을 분담한다는 의미에서 장점이지만 책임에 따른 의무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책임 회피'의 구실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공동책임은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가?

  "모두 책임진다는 말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라는 황당한 결론에도 도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세대 내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 '모두'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이다. 공동주택에서 자주 민원으로 제기되는 몇 가지 사례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각 동 지하에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입주민의 제보가 있었다. 확인해 보니 한두 해만에 발생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상당기간 동안 입주민들의 불법 투기물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되지 않고 순간순간 경비원들의 임의 판단으로 지하 창고에 방치되어 온 결과이다. 친한 경비원에게 '부탁'을 한 입주민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동안의 정으로 거절을 못한 경비원의 잘못인가? 지하 창고를 제때제때 살피지 못한 관리사무소의 무능인가? 결론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로 종결된다. 왜 그럴까? 공동 책임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공용 장소에 무단으로 방치한다든가, 재활용 물품 및 음식쓰레기를 정해진 장소와 절차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무단 투기하는 문제, 전면 주차를 아무리 강조해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후면 주차를 하는 등 모두가 한결같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리 단속을 하고 계도를 해도 그때뿐이다. 조금만 감시, 감독이 느슨해지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내 공간이 아니고 당장 나한테 손해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질은 '공동' 공간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런 '이탈'을 중, 장기간 덮어준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결국은 이 모든 문제들이 하나하나 입주민 전체의 비용 손실로 돌아오고, 오히려 훨씬 더 큰 금액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상식에 가까운 진리를 알면서도 당장은 그러하다. '공동'이란 단어 속에는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밀의 감성이 숨어있는 모양이다.


  요즘 웬만한 아파트 단지는 홈오토메이션을 통해 세대 내 냉난방 및 가전제품 운용, 외부 차량 및 주차 관리, 동 출입문 자동개폐 및 보안 등을 모바일로 관리한다. 아예 입대의 회의도 실시간으로 세대 내에서 방청하고 질문과 댓글까지 남길 수 있다. 다만 이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신축단지가 아니라면 전문 인력, 설비, 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더불어 정보통신법에 따른 전 세대의 동의가 필수이며 해당 구청의 허가까지 받아야만 하는 '공동' 책임의 범위 내에 있는 이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세대’ 내 문제로 착각 또는 오인하는 입주민이 많다. 왜 그런가? 나의 불편이 전체의 불만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개발, 재건축을 실시 가능 여부도 경우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전 입주민의 75% 이상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최소 수준이다. 모바일과 인터넷, AI 등 첨단 기술에 익숙하지 연령층이나 개발보다는 환경을 우선시하는 세대들의 바람과 요청은 '공동 책임'이란 근거로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공동 책임의 또 다른 착시 현상이다.


  비상, 긴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공동'은 세대 무관심 영역이다

  '공동'과 '세대'의 경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라와 나라의 경계선인 국경처럼 분명하고 명확할 수 있을까?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층간 소음, 흡연 문제, 반려견(묘) 입양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약과 규정에 전담 위원회까지 설립하도록 정해 놓고는 있지만 그 효과와 유용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세대별 누수와 크랙문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세대 내 천정 누수 및 외부 벽 크랙으로 인한  베란다 누수는 세대 간 문제이면서 '해당 동' 전체의 사안일 수도 있다. 책임 소재를 밝히는데 많은 시간과 절차, 그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대표적인 민원들이다. 보험 회사, 기전실내 영선팀까지 결부되면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는 사례가 많다. 핵심은 수리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이다. '공동'이냐? 아니면 '세대'에 국한하느냐? 쉽게 결론이 나는 경우가 참 드물다. 여기에 주차장 누수에 의한 차량 손상도 한몫을 차지한다.


  안전과 보안은 전체 입주민의 '공동' 관심사이다. 특히 저학년 자녀를 둔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안인지도 모른다. 초등학생들 통학로상의 건널목 교통안전부터 청소년 야간 하교 길을 비추는 단지 내 가로등 밝기까지 신경 써야 할 안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여기에 긴급 상황을 포함한 24시간 단지 내를 모니터링하는 CCTV와 비상 연락망의 전초기지인 상황실 운영과 관리까지 고려하면 '공동'의 무게를 감당해 내기가 점점 버거워진다. 소방 알람이 새벽에 갑자기 울리고, 사전 예고 없이 단지 내 전체가 정전이 되고, 공동 운동시설 내 트레이드 밀에서 운동 중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세대'는 '공동'에 별로 관심도 없고 사소한 '의견'조차 제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공동이 붙은 공간과 시설에 대한 개선, 개혁 그리고 발전과 향상은 늘 강 건너 불구경일수밖에 없다. 동대표, 입대의, 관리주체가 각각 자신의 임기 내에 기존 '공동, 공용' 공간과 시설의 폐해를 낱낱이 검토하고 그 원인을 찾아, 이를 전체 입주민에게 소상히 밝히고 상당한 금액 집행의 '동의'를 얻어 보완 공사를 완료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전임 또는 전전임 입대의와 연관되어 있다면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이웃간의 적극적인 ‘소통’만이 공동 책임 회피 극복하는 유일한 길

  오래전, 지방 소도시 한적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지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입구부터 지하 주차장을 거쳐 단지 내 인도 보도블록까지 절대 비싼 재질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환경이 상당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시간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청결, 보수 상태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서 그런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더 나아가 유아용 유모자, 어르신 보행기 또는 전동차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경계석 지점마다 경사가 완만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왜 지방 아파트 단지는 서울, 경기 지역보다 '공동 책임'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고 나름 좀 더 잘 극복하고 있을까? 그들이 '공동, 공용'의 책임 범위를 각 '세대'의 관심과 우선순위로 전환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체 입주민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통해 공동체 생활에 대한 세대별 책임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주 소통하면서 '상호 양보와 배려의 완충 지대'를 차곡차곡 넓혀 놓은 것이 아닐까? 짐작만 본다.


  공동주택은 이웃 간의 '만남과 대화' 횟수에 정비례하여 상호 이해와 신뢰,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키워지고 심화되는 것 같다. 따라서 주민 회의, 동호회 등 다양한 온, 오프라인 활동 및 투명한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통해 열린 대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세대 간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공동 책임 문화를 보다 건전하게 육성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동 책임'차원에서 매년 가을마다 쌓이는 낙엽과 겨울 눈 청소를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단지 환경을 만들어 나가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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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관리주체(위수탁 관리업체),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입주민의 역할을 국가의 삼권분립으로(정부의 행정권, 국회의 입법권, 법원의 사법권) 비유할 수 있다. 관리업체(행정)는 유지보수, 서비스 관리, 입대의 의결 사항의 집행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입주자대표회의(입법)는 아파트단지의 예산, 정책, 규약&규정 제정. 변경 등을 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사법유사)는 순수한 사법부는 아니지만 동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 및 적법성을 보장한다. 또한 선거와 관련된 분쟁을 조정한다. 입주민(균형과 감독)은 유권자의 역할을 하며 동대표를 선출하는 동시에 주민 의견 청취투표를 통해 관리업체 변경 등 주요 사안 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한 국가의 제4권인 '보이지 않는 언론'으로 삼권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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