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II 공동주택의 ‘삼권분립’을 해치는 7가지 '아파트' 문화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라 한다)는 입주민 중에서 선출된 동대표로 구성된다. 임기는 2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동대표 중에서 회장, 감사, 이사 등 임원을 직,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공동체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안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회의이자 상설 대표기구이다. 회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간 예산, 시설 유지 관리, 보안 및 커뮤니티 규칙 제정 등과 같은 이슈들을 다룬다. 동대표는 관리주체와 입주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여 투명한 의사소통과 공정한 의사결정을 보장하고 책임진다. 목표는 모든 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동시에 협력을 촉진하고 갈등과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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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관리소장은 공동주택에서 40여 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주택관리사 1세대 출신이고 최고참이면서 한마디로 '전문가'이다. 채용 면접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이후, 입대의 정기, 임시 회의 때마다 그의 발언 내용은 물론 준비 자료들이 공동주택의 산 역사이고 기록자료라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더불어 오래된 경험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축적된 '지혜와 지식'이라는 확신까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입주민 상호 간에는 '공감'을 이루기 참 어려운 공동주택의 인간관계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믿음과 신뢰'가 신임소장에게만은 저절로 생겨난다. 일단 관리주체와의 관계는 출발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풀지 못한 해묵은 고민들이 골치 아프게 한다. 공동주택의 구성원은 일반 사회와 달리 단지 내에서만큼은 모두 개별적으로 '주인공'이고 절대 조연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각자의 '주체성'이 너무나 확고하고, 그로 인한 주장과 의견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굳이 단지 내에서 새로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도, 이미 맺은 관계를 단칼에 끊어 내더라도 '거주하고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런 성향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모두 주연이고 조연은 없는 사회, 자기주장만 있고 '신뢰와 이해'는 절대 없는 사회
어쩌면 공동주택의 인간관계에서는 '믿음과 신뢰'는 아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상호 간 이해심까지도 사라지고 일단 누구도 믿지 않게 된다. '이웃'이란 동네, 마을 공동체의 기본 개념자체가 출발선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새로운 관계 형성을 경계하고 시작조차 하지 않고 가능한 한 피하려고만 한다. 자신들이 뽑은 동대표라고 예외일리 없다. 입주민 대부분이 생업에 바쁘다는 이유로 '동대표'를 본인 스스로는 할 생각도 없고, 괜히 나섰다가 '자존심은 물론이고 경력에 괜한 흠집이 날까' 극도로 나서는 것을 꺼리고 조심한다. 더 나아가 동대표 하려는 입주민을 마음속으로 약간의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동대표 선거결과는 항상 크게 다르지 않다. 입주민들은 규약에서 정한 선거 성립을 위한 최소 요건을 겨우 충족할 수 있을 정도로만 투표에 참여하고 그 외 주민들은 거주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투표에 참여할 생각조차 없다.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입주민 모두는 단지 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물론 신뢰도 없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각 세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히 관리비 비용분담 기준에 대해서만 본인의 주장과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관계'와 채널에 한해 그나마 겨우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마저도 아니면 말고다!
이처럼 믿음과 신뢰가 필요 없는 공동주택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공통 문화는 바로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주인공' 의식으로 무장한 눈에 보이지 않은 '수렴청정' 세력들의 탄생이다. 왜 공동주택에서는 고질적인 미해결 문제는 계속 쌓이는데 '시원하게' 해결되는 사안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 그냥 방치되고 묻히고 말까? 모든 문제의 해결방향은 항상 그저 그런 미적지근한 절충이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양측 입장을 조금씩 포용하는 교집합 지점 안에서 우왕좌왕만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시원한 해결책이란 극히 드물다. 신임소장과 이런저런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고 입대의가 새로 구성된 후, 네다섯 차례 임기동안에 지속적으로 입대의 회장, 이사, 동대표들이 '파벌,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면 그나마 좀 나은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그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입대의 전임 임원들을 비롯한 연령별, 직업별, 평형별, 소유형태별 등 다양한 입주민들과 온, 오프라인으로 소통을 하면서 어렴풋이 '숨겨진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다.
한동안 아파트 단지 내부를 심층적으로 찬찬히 살펴보니, 긍정적으로 보면 '집단 지성'이고 부정적으로 평하면 압력단체이면서 '파벌'이고 '세력'이 서너 개씩 '꼭' 존재함을 어렴풋이 실감하게 된다. 그들 모두 각각의 강한 소신과 의견으로 똘똘 뭉쳐, 단지 내 이미 구축해 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들만의 관계망을 이용해, 단지 전체를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내 중요한 결정에 대해 본인들에게 사전에 의견을 묻지 않거나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규약 개정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익힌 규약과 법률상 허점과 관행, 관습 심지어는 상식까지도 활용하여 쟁점을 만들고 이를 여론화하여 '시간 끌기'로 입대의 의결자체를 무력화시키기 일쑤이다. 입주민들의 기본적인 무관심과 '편향된' 의심도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주장'을 지지하게 만드는 훌륭한 무기이자 수단과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익명성에 바탕을 둔 온라인 주민방은 여론을 호도하고 그들의 의도된 '비판'을 오히려 정당화시키는데 큰 힘과 역할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입대의와 관리소장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파벌 간의 합종연횡하여 입대의 임원과 관리소장의 교체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입주민과 동대표의 포기 없는 '인내'와 '끈기'만이 유일한 해결방향
이 같은 황당한 일들의 발생 근저에는 '상호 불신'과 '주인공'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사람을 부리는 '권력욕'도 이런 의식의 옆자리 한편을 굳게 지키고 있다. 이 같은 고질적인 병폐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변화자체가 불가능한 '입주민'의 의식을 '변혁'하고 '환골탈태'시켜야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말하나 마나 한 해결방향이지만 이 또한 공동주택의 태생적인 아이러니한 '굴레이자 족쇄'이다. 환경적인 요인으로 믿음과 신뢰를 쌓기 어려운 공동체 사회인데, 근본적인 해결점은 '무관심과 불신을 타파해야 가능하다'니 더욱 그렇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입주민은 믿을 수 있는 동대표를 제대로 선출하고, 그 동대의 임기동안만큼은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주택의 문제 근원을 파악한 동대표 역시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 같은 내용을 입주민들에게 되풀이하여 전달하는 책무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해법은 한마디로 입주민과 동대표의 '끈기'와 '인내' 싸움이다. 정리하면 동대표는 임기동안 수많은 개별적이면서 주관적인 입주민과 모래알 같은 파벌의 여론 몰이식 비판을 견뎌내고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멧집을 수시로 키워 나가야 한다.
동대표에 선출된 이후, 가장 힘들었던 문제는 입주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고, 공청회 등과 같은 모임을 추진해도 '일정과 주제'때문에 번번이 연기되기가 일쑤이다. 간신히 개최해도 참석인원수가 1%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참석인원 역시 압력성향만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 온라인을 통한 소통창구는 있지만 간접적인 '구어체' 대화로 이해와 믿음을 쌓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입주민이 온라인 주민방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발언을 하는 참여자도 전체 구성원의 10%,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입주민 전체의 공통 관심사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기 위한 소통채널로는 온라인 주민방이나 공청회, 둘 다 그리 효과적인 수단과 방법은 아닌 듯하다. 또한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의 정보를 불법으로 사용,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동대표와 입주민간의 원활한 소통을 오히려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동대표로 입후보를 할 때, 입주민에게 연락처 등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운영상에는 사안에 따라 너무나 많은 또 다른 사전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간단히 말해 입주민과 동대표 양쪽 모두는 '공동주택' 환경조건으로 인해 신뢰 형성을 위한 출발선상에 아예 서기조차 힘들다는 말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동대표는 입주민에게 '신뢰와 지지'를 요청하지도 말고 입주민은 동대표에게 '봉사'와 '사명감'을 기대하지도 말자! 다만 꼭 3가지만은 지키자. 우선 우리 아파트 단지의 '규약과 규정'을 서울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최신판을 기준으로 항상 업데이트하여 개정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입주민은 개정안 발의를 위한 의결에 필요한 입대의 구성원수만큼의 동대표를 필히 선출해야만 한다. 이와 함께 입대의 의결로 발의된 개정안(우리 단지에 맞는 규정 불필요)을 입주민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승인해야만 한다. 그리고 입대의와 관리소장은 예외 없이 개정된 규약대로 의결하고 집행한다. 입대의가 아전인수(我田引水), 견강부회(牽強附會)한 의결을 절대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지 내 어떤 세력과도 '합종연횡(合從連橫)'하지 않을 '조연급 동대표 세력권'을 새로 구축한다. 끝으로 동대표는 항상 입주민 개개인의 의견과 주장을 공동주택의 제4 세력인 '여론'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 흐름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논쟁의 핵심'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하나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동주택의 동대표는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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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관리주체(위수탁 관리업체),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입주민의 역할을 국가의 삼권분립으로(정부의 행정권, 국회의 입법권, 법원의 사법권) 비유할 수 있다. 관리업체(행정)는 유지보수, 서비스 관리, 입대의 의결 사항의 집행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입주자대표회의(입법)는 아파트단지의 예산, 정책, 규약&규정 제정. 변경 등을 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사법유사)는 순수한 사법부는 아니지만 동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 및 적법성을 보장한다. 또한 선거와 관련된 분쟁을 조정한다. 입주민(균형과 감독)은 유권자의 역할을 하며 동대표를 선출하는 동시에 주민 의견 청취투표를 통해 관리업체 변경 등 주요 사안 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한 국가의 제4권인 '보이지 않는 언론'으로 삼권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