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II 공동주택의 ‘삼권분립’을 해치는 7가지 '아파트' 문화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라 한다)는 입주민 중에서 선출된 동대표로 구성된다. 임기는 2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동대표 중에서 회장, 감사, 이사 등 임원을 직,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공동체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안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회의이자 상설 대표기구이다. 회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간 예산, 시설 유지 관리, 보안 및 커뮤니티 규칙 제정 등과 같은 이슈들을 다룬다. 동대표는 관리주체와 입주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여 투명한 의사소통과 공정한 의사결정을 보장하고 책임진다. 목표는 모든 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동시에 협력을 촉진하고 갈등과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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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거주 형태로 자리 잡은 신도시 대단위 아파트단지는 주민들이 직접, 대의기구인 동시에 관리운영주체 중의 하나인 입대의 회장, 감사는 물론 그 구성원인 동대표를 보통, 평등, 비밀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한다. 한편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관리비 및 예산을 평등? 하게 분담하여 매년, 매월 수익도, 적자도 발생하지 않는 사회주의적 '공동 분배'라는 기본원칙을 함께 결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천 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은 단순히 많은 가구가 함께 사는 공간을 넘어서, 단지 외부 세계와는 약간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이 중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가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이라는 인간관계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는’ 관계를 의미하며, 주민들이 서로 지나치게 가까워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체 생활을 불편부당(不偏不黨) 하지 않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만의 속마음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마음가짐의 본질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필요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어쩔 수 없는' 융합이며 해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규모 공동주택에서는 수많은 이웃이 인접해 있어 각자의 사생활이 소중하게 여겨지며, 동시에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단지 주민들은 일반 사회 또는 직장과 달리 명확한 사익보다는 '모두 함께 한다'는 다소 모호한 공익을 공동 목표로 설정하고, 자신은 이로 인한 큰 부담은 받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책임과 의무는 나름 '공평하게 분담하고'싶는 외줄 타기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민주와 사회의 융합, 정반합의 변증법적 해법?
공동주택의 민주적인 절차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동대표를 선출하고 공동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의미하며, 약간 사회주의적인 색채는 비용을 평등하게 분담하고 예산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체계로 나타난다. 먼저, 민주주의적 요소는 주민 개개인의 의견을 반영하고 공동의 의사결정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나, 실제로는 참여율이 낮거나 일부 영향력 있는 집단에 의해 결정 과정이 왜곡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반면 관리비 공동 분담과 예산 균형은 재정적 공평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이러한 엄격한 예산 관리 체계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나 개선 투자를 유연하게 처리하는 데 제약이 되고 더 나아가 때때로 경직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더불어, 두 원칙의 공존은 때때로 내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엄격한 재정 통제를 요구하는 사회주의 원칙 사이에 긴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느 한쪽의 이상과 장점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대규모 공동주택 운영시스템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원칙의 혼합은 기본적으로 논리적 모순은 없으나, 실제 적용 시에는 참여 부족, 권력 집중, 경직된 재정 운영 등의 에상밖의 난제로 인해 기대한 효과를 100%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동주택을 둘러싼 사회, 경제적인 환경이 일반사회와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혹시 오래전 세계를 한때 풍미했던 '정반합(正反合)'의 선순환 구조로 설명되는 변증법적 해법*의 또 하나 비선형성(非線型性) 사례로 변질되어 버리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단 이 같은 균형 잡힌 원칙과 태도는 지나친 친밀감이 초래할 수 있는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는 동시에, 또한 필요한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순간에는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은 자연스러운 중용의 원칙을 체화하고 있고, 이를 통해 공동체 내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효과적인 절충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운영 경비와 예산 관리 방식이다. 공동주택에서는 매월 또는 매년 대차대조표 좌우항목을 '0(Zero)'하여 크던 작든 손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정 계획을 세심하게 조율한다. 모든 주민이 설정 기준에 맞추어진 형평성으로 비용을 분담하고, 전체의 부담을 공동으로 나누겠다는 가치관이 반영된 이 시스템은,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경제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엄격한 재정 관리와는 달리 주민들은 공동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직접 의견을 내고 또한 참여한다. 동대표 선출이나 주요 정책 결정 등은 모두 주민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모든 이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투명한 운영을 보장하고 있다. 주민 참여 방식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와 소속감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파트 단지의 혼합된 운영 체계는 서로 상반되는 이념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보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공동체 주민들은 각자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으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비용과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는 현실적인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공동주택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상호 보완적 기준과 원칙의 접근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곤 한다.
'직접'과 '공동'이라는 두 단어의 실행적인 결합을 이끌어 낸 ‘불가근불가원’ 문화의 출발은 밀집된 도시 생활에서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필수적이라는 기본적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백 가구가 한 건물에 모여 살다 보면, 각 가구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는 이웃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태도로 이어진다. 또한, 인접 생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피로감은 서로 간의 지나친 접촉을 자제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장기간의 밀집 생활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감정적 부담은, 때때로 불필요한 갈등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주민들은 의식적으로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 내에서는 명확한 공동 목표 대신, 일상 속에서의 책임 분담과 공평한 비용 부담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되고 만다. 주민들은 구체적인 이익 추구보다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원만한 관계 형성을 우선시하며, 이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통해 전체 공동체의 '평온과 조화'라는 표면적인 결과만을 낳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한편 지나치게 확립된 거리 두기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깊은 유대감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 개인의 독립성이 강조되다 보면, 때로는 소속감이나 주인의식이 약화되어 갈등이 발생할 때 효과적인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처럼, 지나친 독립성은 공동체 전체의 결속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관리비의 투명성 문제로 인한 분쟁이나 공용시설 사용과 관련된 갈등이 이러한 단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공동주택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약개정에 대해서도 단지 전체의 장기적인 발전방향보다는 자신이나 또는 거주하는 동에 미치는 단기적인 손익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표출된다.
지자체 공동주택 관리준칙에 맞춰 '단지 규약과 규정'의 시기적절한 개정
‘불가근불가원’ 문화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피트니스 센터나 주차장 등에서 발생하는 다툼과 분쟁들은, 주민 간의 신뢰 부족과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게다가 입주민 대표 선출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직접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대표를 선출하려는 제도는 이론상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세력이 장기간 권력을 유지하거나, 선거가 형식적인 절차로 그칠 때가 많다. 이로 인해 일부 주민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공동체 운영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자 대표 선출 과정에서 일부 영향력 있는 그룹이 대표권을 독점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결과 대표회의 내에서 의견 충돌과 갈등이 발생하여 관리비 집행 및 공용시설 사용 문제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또한 공동시설 관리와 관련하여 주민들이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반대로 무관심해져서 발생한 분쟁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관리비 불투명 문제와 함께 법적 소송으로 발전한 경우도 자주 보고(報告)되고 있다. 이런 모든 장, 단점 사례는 ‘불가근불가원’ 관계가 단순히 이상적인 이론으로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동체 운영의 원활함을 도모해 보려는 과정의 산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보다 건강한 공동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 간의 활발한 소통과 정보 공유가 지금보다는 좀 더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공용시설 운영 규정을 좀 더 명확히 해 둘 것을 강력히 권장하고 싶다. 이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의 노력까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비록 가깝고도 먼 사이이기는 하지만 상호 간의 꼭 필요한 '신뢰와 협력'의 기본 토대정도는 유지해 나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공동주택은 주거 환경적 영향에 의한 인의적인 결과이든 입주민 개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자연발생적인 문화현상이든 관계없이, '불가근불가원' 관계 사회라는 특성으로 이미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이를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 어떤 기준과 원리가 당연히 전제되어야만 할까? 다름 아닌 공동체 생활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약과 규정'의 철저한 준수이다. 또한 지자체마다 제정해 놓고 있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에 맞게 시기적절한 개정작업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지자체 공동주택 관리준칙은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불가근불가원 관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분쟁'들에 대한 해법을 실시간으로 내용에 검토, 반영해 놓고 있다. 입대의는 이에 대한 유권 또는 자의해석을 엄격히 제한해야만 한다. 특히 단지만의 자체 규약이나 규정 내용을 추가, 별도로 마련하는 것도 가능한 한 삼가는 것이 좋다. 괜한 다툼의 근거가 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불가근불가원'은 긍정적으로 보면 중용이고 불편부당이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자신만의 성을 쌓는 일이다.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자연발생적으로 포신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결국 불가근불가원 관계의 승패는 예측되는 사안발생 전에 입주민 서로가 '스스로 인정하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선긋기를 미리 얼마나 어떻게 잘 정해 놓느냐'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불가근불가원 선긋기의 척도로 활용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의 기준점은 '지자체 공동주택 관리준칙만 한 것이 없지 않나' 싶다. 항상 입대의 첫 번째 임무는 관리규약의 업데이트를 위한 전체 입주민 승인 절차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챙기고,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는 일부터 가장 먼저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입대의 회장, 감사, 담당 이사 등 임원들을 중심으로 한 지속적이고 '공백'없는 모니터링과 정기적인 내부 감사를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수시로 관리비 사용 내역, 시설 보수 현황, 예산 집행 과정을 면밀히 점검한다면 더 바랄 나 위가 없다.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주기적으로 즉각,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모자람이 없다. 이를 통해 문제 발생 시 조기에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정기 공청회, 온라인 커뮤니티와 회의록 공개 등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대표 및 관리 주체의 책임성을 높이고 불신을 원천척으로 해소할 수도 있다. 더불어 제도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입주자 동대표 선출 절차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 도입, 관리비 및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내외부 감사 시스템 심화, 그리고 분쟁 발생 시 중재 위원회의 역할을 법적으로 강화하는 방안까지 고려해 봄직하다. 이 같은 개선 조치들을 적절히 반영하여 현재 공동주택의 운영 체계를 보완한다면 민주주의 직접, 보통의 원칙과 사회주의적 평등 분담의 이상이 실질적인 운영 체계로 긍정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결국 입대의의 이런 끈질기고 지속적인 개선 노력만이 공동주택 내 ‘불가근불가원’ 인간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발전시키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예방함과 동시에 전체 공동체의 운영 효율성과 주민 만족도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첩경(捷徑)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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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관리주체(위수탁 관리업체),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입주민의 역할을 국가의 삼권분립으로(정부의 행정권, 국회의 입법권, 법원의 사법권) 비유할 수 있다. 관리업체(행정)는 유지보수, 서비스 관리, 입대의 의결 사항의 집행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입주자대표회의(입법)는 아파트단지의 예산, 정책, 규약&규정 제정. 변경 등을 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사법유사)는 순수한 사법부는 아니지만 동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 및 적법성을 보장한다. 또한 선거와 관련된 분쟁을 조정한다. 입주민(균형과 감독)은 유권자의 역할을 하며 동대표를 선출하는 동시에 주민 의견 청취투표를 통해 관리업체 변경 등 주요 사안 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한 국가의 제4권인 '보이지 않는 언론'으로 삼권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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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는 모든 초기 사상(정, 正)이 그에 상응하는 모순(반, 反)을 불가피하게 낳고, 이 둘 간의 갈등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이해(합, 合)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이 역동적인 과정은 사고의 발전과 현실의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하는 본질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