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도와주기'가 아닌 '함께하기'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by 자모카봉봉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책입니다. 저도 그림책에 관심이 생기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책입니다. 근데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책인가 갸우뚱했습니다. 돼지책이라고 하니 '아기돼지 삼형제'와 같이 돼지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표지에 돼지는 없고 한 여자가 남자 셋을 업고 있죠. 그리고 표정을 보면 남자 셋은 아무 생각 없이 활짝 웃고 있는데, 엄마의 얼굴은 많이 지쳐 보입니다. 표정을 통해 책의 내용이 조금은 짐작이 되지 않나요? 육아맘, 특히 직장맘이라면 내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표지에서 돼지얼굴을 하고 있는 덩치 큰 남자는 피곳 씨입니다. 피곳 씨는 두 아들인 사이먼과 패트릭, 그리고 아내와 함께 멋진 집에 살고 있습니다. 멋진 정원에, 멋진 차도 가지고 있을 만큼 멋지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곳 씨는 아내에게 매일 빨리 밥을 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중요한 회사로 휑 가버립니다. 사이먼과 패트릭도 "엄마, 빨리 밥 줘요."외칩니다. 그리고 학교로 휑하니 가버립니다. 피곳씨와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갑니다.
피곳씨와 두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면 또 밥을 달라고 외칩니다. 피곳씨와 아이들의 저녁을 먹자마자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희들은 돼지야" 쪽지를 남기고 피곳 부인은 떠나버립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은 손수 저녁밥을 지어먹어야 했고, 설거지와 빨래는 하지 않아 돼지우리처럼 변해갑니다. 결국 집에 먹을 것까지 떨어진 어느 날, 엄마가 돌아오게 되고 엄마에게 이야기합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그날 이후로 피곳씨네 집은 많이 바뀌게 됩니다. 피곳씨가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패트릭과 사이먼은 침대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환하게 웃으면서 차를 수리하기도 합니다.


아마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직장맘이라면 더 많이 공감할 이야기입니다. 직장맘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 보입니다.

결혼 전에도 그렇게 여유 있던 아침은 아니었지만 엄마라는 이유로 출근을 준비하는 동시에 아이들 등원, 등교 준비까지 함께 해아 합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맘 편하게 일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하면서 아이들 걱정하고 저녁 메뉴까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픕니다. 이번 주말에 집안 행사가 있다면 행사에 대해 고민하고 서칭도 해야 합니다. 상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퇴근을 하고 나면, 이제는 집으로 출근을 합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10분이라도 늦으면 어린이집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 빨래, 청소 등의 밀린 집안일을 합니다. 결국 엄마는 가장 마지막에 잠을 자게 되고 모두가 자고 난 뒤에야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고, 화장을 지우며 내 지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직장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하루 일과이고, 더하면 더했지 나는 이렇게 힘든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하반기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고용 현황’에 따르면 가구 1224만 5천 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567만 5천 가구로 46.3%에 달했습니다. 2017년 10월에 비하면 맞벌이 가구는 21만 9천 가구(4.0%) 증가한 것으로 맞벌이 가구 비중은 전년 대비 1.7% p 상승했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밖에서 일을 한다면 남자도 집안일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전히 가사와 육아일은 엄마의 몫입니다.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이 발표한 2018년 '일 생활 균형을 위한 부부의 시간 배분과 정책과제'결과, 맞벌이 부부의 경우, 주중 시간 동안 아내의 가사노동시간이 남편보다 7.4배 길고, 육아 시간도 3.5배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말의 경우에는 아내가 각각 4.3배, 1.7배 긴 것으로 나타나 주중보다는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사도, 육아도 아내에게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는 있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는 시대에서 생각해본다면 지금 이 시대는 상상도 못 할 시대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모양을 갖출 뿐, 생각은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을지 모릅니다. 아직 집안일을 함께한다는 말보다는 도와준다라는 말이 익숙하죠. 도와준다는 말에는 원래 여자의 몫이지만 함께 거들어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돼지책에서 처럼 집안일은 우리 모두 함께하는 일로서 아빠가 설거지도 하고, 아이들이 이불 정리도 하는 것을 내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엄마가 차를 수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지 않나요? 차를 수리하는 것 역시 무조건 아빠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엄마가 더 좋아할 수도 있고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주세요.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엄마와 어린 딸의 대화 내용을 듣고 울컥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엄마는 날 낳고 잃은 게 뭐야?" 엄마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젊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첫째 아이 키우고, 둘째 아이를 키우다 보니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도 바뀌고, 그나마 자신 있었던 허리에는 무언가 묵직하게 잡히기도 하고, 피부도 예전과는 다름을 느낍니다. 그래도 엄마들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들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오늘도 내일도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다 해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겨우 투덜거릴 뿐이죠.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러 있고, 그 사이에 나 자신이 많이 달라져있음을 느끼겠죠.

누구의 일이라고 구분하지 않고 가족의 일을 함께 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돼지책에서의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더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밥을 해 줘서 고마워", "당신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줘서 고마워"라고 해줬다면 적어도 집은 나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감사의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설거지는 내가 해야겠다"와 같은 결심도 좋지만 그동안의 감사에 대해 먼저 말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