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호 May 30. 2024

내 청춘은 저주받았다

나는 열정의 저주에 걸렸다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삼성전자 입사, 글로벌 기업으로의 이직, 고액 연봉, 공기업에 다니는 아내. 분명 저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환경을 갖췄는데 여전히 행복의 순간은 아주 잠시 제 주변을 머물다 스쳐갈 뿐이었고, 제 마음은 늘 가난했습니다. 불안이 턱 밑까지 차올라 버겁게 느껴지고, 때로는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10대부터 20대를 거쳐 30대에 이르기까지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하며 살아왔는데, 뭐가 문제였던걸까요? 




내게 주말은 추월차선

원래 청춘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20대에는 조금만 더 참고 30대가 되면 주변 모든 것이 안정을 찾을 거라 믿었습니다. 직장도, 가정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면 이 모든 불안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치열하게 취업을 위해 스터디, 학원, 모의 면접 다양하게 노력했습니다. 스터디를 많을 때는 10개씩 동시에 돌기도 하다 보니, 점심 저녁은 편의점 삼각김밥을 길거리에서 먹으며 때우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취준생에게 주말은 제대로 쓰지 않으면 그저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뒤쳐지는 날일 뿐이었습니다. 주말에 하루라도 더 공부하고, 스터디는 해야 본전이고, 안 하면 다른 지원자들에게 추월당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주말이든 언제든 하루라도 쉬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숨을 죄여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인적성 문제든, 면접 후기든 뭐라도 하나라도 더 공부하면서 졸릴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만 했어요. 그래야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20대, 30대가 원래 다 이런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청년 고통의 주범처럼 낙인찍혀버린,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을 제 스스로 되새기며 가열차게 달리는 데에만 열중했습니다. 마치 경주마처럼 말이죠. 애초에 저 슬로건이 청춘을 '열정페이'로 싸게 부려먹으려고 만들어졌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그런 비판을 생각할 시간에 저는 취업 시험 문제를, 면접 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남들보다 앞설 수 있고, 마침내 행복해진다고 믿었습니다.



누가 30대가 되면 인생이 좀 편해진다고 했나?

그렇게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짜릿한 성공의 기억도 잠시였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성장의 한계와 갈증을 느끼고, 위기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퇴근 후 이직 스터디를 찾아 해멨습니다. 저에게 주말은 여전히 사치였습니다. 편의점 삼각김밥이 김밥천국으로 업그레이드 되긴 했지만, 여전히 밥 먹는 시간보다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미래 준비가 저에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30대가 되었고, 운 좋게 이직에 성공하고, 결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좀 행복해지고 주말에는 좀 편안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 싶었는데, 이제는 안정적인 주거라는 또 새로운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사실 직장에 다니는 이유 중엔 경제적인 이유가 절대적인데, 경제적으로 성공을 하지 않으면 이 모든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재테크를 열심히 하고, 나름의 성과를 냈습니다. 주택청약도 받았고, 투자도 대박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삶은 불안의 그림자로 가득 드리워져 있었어요. 혹시 한국에서 살아서 문제인건가? 언젠가부터 나에게 한국이라는 환경이 주는 내재적인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주변에서는 부동산 투자에 성공해 월세 수천만원을 받는 사람들 이야기가, 코인으로 100억, 1000억을 번 사람들 이야기만 넘쳐났습니다. 그냥 직장에 적당히 가만히 있는 제가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열정의 저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열심히 살더라도, 또는 열심히 사는것과 무관하게, 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는걸까? 소기의 성취를 거두어도 그 다음 성취가 간절해지고, 그 다음 성취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암시에 스스로 걸려 있었던 건 아닐까? 매 순간 제 안에는 갈망이 가득했습니다. 갈망으로 가득찬 스스로는 어느 새 그 다음 목표를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습니다. '올 해 이직을, 승진을 꼭 해야 해.' '지금 현재 이 팀은 아쉬우니 올 해 반드시 옮겨야만 해.' '내년에는 꼭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해.' 하나라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온 몸이 떨어야만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예전 일기장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제 일기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늘 '~해야만 해.' '반드시', '꼭', '더 좋은', '더 높은'이라는 말들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열정으로만 지금까지의 삶을 어찌저찌 지탱해 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열정의 힘을, 가능성을, 그리고 필요성을 믿었거든요. 열정은 분명히 내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하고 있다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막다른 길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정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대신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느낌이 문득 말이죠. 혹시 나는 열정의 저주에 걸린 게 아닐까? 

어쩌면 열정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걸까? 



명상, 내가 만든 지옥의 작은 탈출구

뭔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뜨거운 열정은 제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 마침내 도달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제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어느 순간 고장나기 직전의 엔진같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연료로 삼아 끊임없이 제 자신을 소진시키며 달려왔지만, 이제 그 한계에 맞닥뜨린 것 같이 보였거든요.


그래도 위안이라면, 해방의 탈출구를 찾는 노력이 조금은 저에게 희망을 보여준걸까요? 이런 저런 시도 끝에 5년간 지속하던 명상 속에서 저는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정의 중간에 저에게 큰 인생의 여정표가 될 만한 일을 겪었습니다. 바로 스위스에서 시작한 10일간의 침묵 명상코스을 마친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삶을 바라보는 잣대가 대단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정의 저주에서 벗어날 희망이 보였습니다.

열정의 저주에서,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제 여정을 여러분께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과거의 저처럼 행복을 찾아 고통의 미로를 해메는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무척 괴롭고 힘들다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위로 받을 수 있기를..,


* 이미지 출처: Unsplash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