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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산 Sep 12. 2018

사람, 지금, 여기

여기 사람이 있다.

병명에 휘둘리지 않고 운명의 주인이 되어 산다는 건

우리에게 죽음을 불사하는 고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갈등과 혼돈의 와중에서 불치병의 불안이나 죽음의 두려움에 앞서

삶과 죽음에 관한 우리의 태도와 시각을 우선 점검해 보기로 했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견해가 일치해야 윤이의 간병과 앞으로 우리 삶이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같은 곳을 향해 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인과 연을 따라 태어난 이번 생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다하다 하늘의 부르심에 따라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삶을 향해 홀연히 떠나는 인생 길, 

하늘이 축복해 주신 그 존엄하고 존귀한 사람의 삶을 물 흐르듯 조화롭고 평화롭게 감사하며 살다 가는 삶,

가족 중 누가 되었든 연명치료는 하지 않는 걸 전제로 끝까지 나와 우리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생이 될 것이라는 것에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엄마의 밀착 간병을 즐거워하는 윤이와 친구들과 학교생활이 재미있는 사춘기 동생이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과 이별에 관한 주제의 소통은 그 시점과 방법을 하늘의 지혜에 맡기기로 하고 일상을 이어갔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서로 ‘사람’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하늘이 허락해 주신 시간을 끝까지 사랑과 감사로 살아낼 것이다.    


삶과 죽음, 미련과 이별, 건강과 병에 대한 갈등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니 큰 짐을 덜어낸 것 같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진 건 아니어서 병든 윤이의 존엄한 삶을 위한 크고 작은 일들은

여전히 엄마인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패키지 아닌 자유여행을 선택했을 때처럼, 내 앞에 닥친 여러 상황을 전문 병원과 첨단 의술과 특출한 의사에게만 내맡기지 않고 우리가 주도하고 선택하고 감당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은 지구를 짊어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금방 알게 되었다.

   

병의 증상과 진행, 상태와 치료등 관련한 여러 정보를 찾고, 

우리가 믿고 신뢰할 만한 병원과 전문의를 선택하고, 

필요한 복지혜택을 받기위해 장애등급을 갱신하고 관계 기관에 신청을 하러 다니면서

조금씩 증세가 악화되는 윤이를 간병 하는 일들은

네 식구의 일상생활만큼 중요하여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거나  다른 누구에게 맡기기도 어려웠다.

보호자겸 엄마인 내가 사방팔방 동분서주, 발바닥에 불이 나듯 몸을 움직여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과다한 일처리로 바닥난 체력을 위해 내 몸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인 나를 돌본다는 건 사치이며 게으름이었다.

아픈 윤이의 존엄한 삶을 위해 엄마인 나의 인간다운 삶은 잠시 아니 무기한 유보 되어야 했다.   

 

우선 지난 1년 응급실을 다니면서 집에서 틈틈이 받던 물리치료는 중단하였다.

무엇보다 윤이가 질색하던 치료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았고 병명을 알고 나니 큰 의미가 없기도 했다.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전후로 준비하고 지키고 정리하는 잡다한 일들로 이래저래 한나절이 걸리던 노동에서

해방되는 기쁨은 누릴 새도 없었다. 그런 일쯤은 일도 아니게 된 이 상황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또 믿고 신뢰할 만한 전문의를 찾는 일이 시급했다.

몸이 아파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어 품격이 떨어진 인간으로 환자를 취급하는 의사가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사람’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존중하는 의사를 만나고 싶었다. 

한번 뿐인 이번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고 아직 이루고 싶은 꿈과 열정이 남아 있으며 머잖은 쾌유의 소망을 가진 소중한 한 ‘사람’으로 환자를 인정하고 대우할 줄 아는 의사,

값비싼 기계 사용과 불필요한 치료 대신 끝까지 진실한 소통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의지와 희망을 이끌어 내는 인간 중심의 인술과 의술을 겸비한 의사라면 병든 몸과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니 그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져 그런 꿈을 깨고 싶지 않았다.

죽음의 문 턱에서 떨고 선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는 어쩌면 첨단 의술을 갖춘 냉정한 의사의 치료보다

사람의 온기가 흐르는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더 큰 안정과 치유의 효과를 보는지 모른다.

어차피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하늘의 뜻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진료를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과 죽음이 두려워 목이 굳은 의사 앞에 비루하고 비굴한 환자와 보호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정보와 오랜 수소문 끝에 그나마 우리의 뜻과 가장 가까운 병원과 의사를 찾아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장애 등급을 갱신하는 일이 그토록 피를 말리는 지난한 과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윤이가 어릴 때 지정된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4급 장애 등급을 받았던 과정은 기억에도 희미할 뿐이어서 최근 받은 진료와 검사기록만으로 갱신이 되는 줄만 알았다.

최근 6개월 동안의 병원 진료기록이 필요하다 하여 수차례 낙상사고와 응급실 기록들 그리고 희귀병으로 받은 산정특례 기록까지 첨부해서 제출하느라 여러 병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고 주민센터를 수도 없이 드나들다가 그만 진이 다 빠졌다. 

교통사고나 재난을 당해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장애 등급을 위해 6개월 이상의 진료 기록을 요구하는지

모르겠지만 번번이 자료가 부족하다며 반려 되어 장애 등급 갱신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복지 혜택을 

받게 될 무렵이면 나마져 병들어 누울 것 같았다.

내규, 관례, 규정의 덫에 걸려 일처리가 한 없이 늘어지는 동안 복지와 행정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온데 간데 없는 형국이었다.

담당자도 잘 모르는 규정, 도우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복지 행정.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대체 이게 누구를 위한 복지이며 무엇을 위한 공무집행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몇 달이 훌쩍 흘러 윤이는 집안에서도 휠체어 생활을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 되었고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이건 마치 불길이 번지고 있는데 몇 미터 이상 불길이 솟아야 호스를 댈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화재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흔한 영양제 하나 꾸준히 챙겨 먹을 여유가 없어 종종 현기증으로 휘정거리거나 하얀 공간에서 무중력

상태가 된 듯 순간순간 정신을 잃기도 했다.

이런 경우 보호자 곁에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끝까지 간병을 책임 질 수 있도록 챙기고 보살펴 줄

또 다른 그의 보호자, 엄마 같은 사람이 절실하다.

게으르고 무정한 복지 행정이 우리의 병을 키워 간 장장 6개월 여 만에 장애 등급 갱신이 겨우 마무리 되어

거동이 불편한 1,2급 장애인에게 부여되는 활동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24시간 간병노동에서 벗어나 낮 동안 잠깐의 여유로 숨통이 트였다.  

  

요사이 심심찮게 ‘간병살인’에 관한 뉴스를 접하자니 나의 지난 몇 년이 필름처럼 스쳐간다. 

“간병, 그거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40이 넘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생을 마치려고 했던 아버지의 한 맺힌 절규,

그 한마디에 실린 고통의 무게와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신산했던 세월이 내 가슴 깊이 찌르듯 전해졌다. 

부모의 이름으로만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장애와 간병.

(마침 오늘자 뉴스에 발달장애인의 진단,교육,취업,의료를 국가가 ‘평생케어’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아프고 지친 사람들은 바로 곁에 숨죽여 있고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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