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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산 Aug 28. 2018

머리와 가슴 사이

무지개만 바라보고 앞으로만 내달리다 천길 낭떠러지 앞에서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무지개의 언저리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진 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쥐는 쫓아오던 고양이에게 죽자고 달려든다는데 나를 궁지로 내 몬 실체 없는 운명의 고양이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에 넋이 나가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선천적 장애로 내내 힘겨운 삶을 살다 시한부 희귀병에 걸린 윤이와 그림자처럼 곁을 지키다 끝내는 루게릭으로 굳어가는 몸을 돌봐야 하는 나의 기막힌 서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가시밭을 헤쳐 애써 도달한 곳이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죽음의 늪이라니... 

이 끔찍하고 가혹한 인생의 주인공이 왜 나와 윤이여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숨을 고르면서 주어진 현실을 냉정히 살펴 볼 시간이 필요 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고 또 그런 처지도 아니었다.

바로 곁에는 서서히 진행되는 마비를 흔쾌히 감수하며 머잖은 쾌유를 기대하고 있는 윤이가 아무 눈치도 못 채고 햇살 같은 미소로 나만 바라보고 있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과 당황스러움을 아무 내색 없이 감춘 채 흩어진 생각과 감정을 추스르면서 앞으로 전개 될 상황에 대비해야했다.    


멘붕을 동반한 벼락과도 같은 상황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상과 불안과 두려움을 제외한 모든 일상은 어제와 다름없이 물처럼 순조롭고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평온한 일상의 흐름 속에 누군가의 숨죽인 절규와 억눌린 분노, 어떤 이의 애끓는 탄식과 절망의 끝자락을 조각조각 숨긴 채 삶의 물결은 도도하게 굽이쳐 흘렀다.    

자의 반 타의 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견디고 흘러야만 하는 내 삶의 방식 역시 거대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내 중심을 잡고 물결을 타거나 거스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제 인생의 키를 쥔 누구라도 그러하듯.    

 

윤이의 당황스런 비보에 함께 걱정을 해 준 지인, 가족들 대부분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과 충격, 슬픔의 결에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자기들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전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정작 슬픔의 한 가운데 있는 내 가슴 속 이야기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심지어 보호자로서의 내 처신에 대한 훈계와 간섭으로 위로를 대신하며 자신의 위안을 삼는 듯했다.

늘 그래왔듯 그들의 닫을 수 없는 입과 열리지 않는 가슴과 귀가 내 슬픔을 가중시켰고 그래서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삶을 송두리 째 뒤흔드는 지진, 쓰나미와 같은 내 고통이 평온한 그들의 일상에 불쑥 나타난 놀라운 사건,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된 느낌이 한기로 몰려왔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몸이 떨렸다.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사멸하여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른다는 불치의 병.

사지가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도 정신은 멀쩡하여 사리분별과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루게릭.

끝내는 호흡과 섭식을 돕는 관들과, 고인 가래를 뽑는 각종 첨단 기계로만 연명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    

생각과 상상만으로도 진저리나고 끔찍한 루게릭의 증상이 윤이를 통해 우리 앞에서 고스란히 진행 될 것이었다.

이를 악물어도 수시로 터져나오는 눈물 때문에 앳된 윤이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병명에 사로잡혀 휘둘리지 말고, 

너무 멀리 내다보고 앞당겨 슬퍼하지도 말고, 

오늘만 생각 하자구’ 

---‘내가 에미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시간은 한정되었고 끝이 뻔하잖아.

    사람이 생각대로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냐구?’  

  

‘인생의 길이보다는 삶의 질, 색과 방향이 중요한 거지.’

---‘신체적 장애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뭘 해 보기도 전에 꼼짝없이 병석에 누워야 해?

    몸 고생, 마음 고생 싫컷 하다 이렇게 병들어 사그러지는 거야?’   

 

‘수천 수만의 인생이 맞닥뜨린 허다한 고통과 슬픔 중 하나잖아. 

우리의 처지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자구.’

---‘아픈 사람 쌔고쌨으니 엄살 떨지 말라고?

   내 손에 가시가 박히면 그만큼 아픈거지 뼈 부러지지 않았으니 괜찮은건가? 

   내 자식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가슴 찢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는 에미가 어디 있어?’

   

‘운명에 맞서 버티거나 저항하지 말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극복해야지.’

---‘대체 왜 우리한테만 이렇게 가혹한 거야? 

    버티고 맞장 뜨면 어쩔건데?’    


‘내가 선 곳이 절벽이라면 절망을 안고 추락하지 말고 

저편 너머 무지개를 바라보며 용기 내어 힘껏 날아보자.’

---‘정말 지긋지긋해.

   보이지도 않는 소망을 품고 무슨 용기를 가지란 말이야?

  절망을 안고 추락을 하든 분노를 품고 끝장을 보든 상관 마!’   

 

‘우리에겐 부활과 영생의 믿음과 소망이 있잖아.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하늘의 뜻은 분명 다르다 했어.’

---‘그럼 윤이는 이번 생에 장애와 병을 온 몸에 붙이고 고생만 하다 죽어 부활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또 나는 장애 뒷바라지하다 그것도 모자라 자식 앞세우고 가슴 찢긴 채 껍데기로만 살아야 하는 거야?     

  하늘의 뜻이 뭔데? 이렇게 가차 없고 잔인한 게 하늘의 뜻이냐구?’    


머리와 가슴, 이성과 감성은 이렇게 상반된 소리들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면의 이 거친 외침을 듣지는 못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마음의 흐느낌과 의문들을 가슴 속 메아리로만 주고 받으며 뜨거운 울분을 삼켜야 했다.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사그러져가는 자식을 아무런 치유의 희망 없이 씩씩하게 간병 하는 것도,

슬픔을 억누른 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것도 엄마인 내가 홀로  감당 해야만 할 일이었다.  

  

찬 머리와 뜨거운 가슴 사이에 절충이 필요했다.

극단의 소리들의 끝없는 널뛰기에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 둘 간의 합의와 균형 없이는 도무지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운명에 휘둘릴 것인가 운명을 직시할 것인가가 앞으로 나와 우리의 시간을 좌우할 것이었다.  

  

억울한 과거나 두려운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지금, 여기, 살아있음’에 집중하기로 했다.

병명에 쫄지 말고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병과 불운과 우리의 삶을 담대한 마음으로

새롭게 펼쳐 보는 거다.

치료가 불가능한 윤이의 매일 매일이 악화일로라면 가장 건강한 바로  ‘오늘’의 축복을 감사하고, 

울고 짜도 달라질 게 없다면 차라리 웃음으로 멀리서 서성이는 복이라도 부르자 다짐했다.

어차피 예기치 못할 운명과 인생이라면 오늘 하루를 걱정 근심 다 털고 감사와 기쁨으로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어떤 불운이나 어려움도 나를 지배하게 둘 수는 없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나는 이 상황을 장악하고 극복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빛난 하루를 두려움 없이 맞이하며 찬송과 기도와 웃음이라는 무기로 침착하게

운명과 맞장 뜨기로 했다.

내 생각의 한계를 넘어 선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완전하고 온전하게 하늘의 뜻대로 완성될 것임을 믿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전심전력을 다해 운명을 향해 휘두를 마지막 한 방의 될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함께 제물이 될 것을 기대하던 운명의 고양이가 뜻밖의 반격에 움찔 혀를 내두르며 뒷걸음 쳐 물러갈 것을 상상하며 다시 기운을 내었다.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는 어느새 너와 나,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빛과 어두움, 운명과 숙명, 몸과 영,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분리와 단절을 넘어 하나 된 현재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 황홀한 비젼이 광채가 되어 절벽 앞에 울고 선 나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따뜻한 위로와 촉촉한 사랑의 느낌으로 다시 눈물이 났다.   


이제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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